[1]
우리나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인, 이순신 장군. 한산도 대첩과 명량대첩 등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포기하거나 가망 없는 싸움이라고 여겼던 전투들을 그의 탁월한 지휘능력을 통해 승리로 끌어낸다. 이처럼 리더가 어떻게 자신의 조직을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조직은 더욱 발전할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그만큼 리더라는 역할은 책임감이 막중한 자리이자 그 조직의 운명이 달린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하루가 멀다고 안 좋은 소식들만 들릴 뿐이다. 대부분의 경제 지표들은 하락세를 보이고 온갖 흉악 범죄와 부정부패 비리 사건, 그리고 얼마 전에 발생한 지진과 태풍 피해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우리나라는 현재 혼란의 연속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의 중심을 잡아줄 사람은 바로 우리나라의 리더, 박근혜 대통령이어야 할 것이다. 2012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통령으로 큰 기대를 등에 업고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취임 이후 역대 최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여겨지던 30%마저 붕괴되며 레임덕 우려까지 낳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의 법적 임기 (2018년 2월 24일) 만료까지 1년 4개월여 남은 이 시점에서, 현재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을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로서 잘 이끌어 나가고 있는지 평가해보고자 한다.
[2]
책임감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바로 ‘책임감’일 것이다. 조직은 리더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리더는 단순히 그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력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행정부의 수장이자 우리나라 안보, 외교,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총 관리자이자 책임자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자의 역할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표적 사건이었다. 국민 수백 명이 바다에서 죽어 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건 발생 이후 7시간 동안 사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7시간 동안 당시의 비서실장 김기춘을 포함한 그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한 유치원에 방문하여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테러 발생 직후 보고를 받고 즉각 현장을 떠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큰 비판을 받았다. 국가 비상사태 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 같은 경우엔 초기 대응을 어떻게 했느냐에 수백 명의 목숨이 걸려있던 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경우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인해 초기 대응에 실패하였고 관련 부처 간의 유기적인 모습이 아닌 우왕좌왕 하는 모습으로 인해 더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게 하였다. 이것이 대통령이 7시간 동안의 부재가 갖는 의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7시간의 미스터리’에 대해 이해할 만한 해명은 없다.
몇몇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은 단순 사고인데 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느냐고 반문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고 원인을 허용치 이상으로 배에 실린 선전의 무게로 보고 있고, 그것을 관리 감독하는 해양수산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관리 감독 부실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마땅하지만, 필자는 사고 발생 이후 박근혜 정권의 대응 방식에 실망을 느꼈다. 한 나라의 리더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보단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한 달 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회 제출과 특검을 통한 의혹 해소 등, 적극적인 사건 해결을 약속 하였지만, 지금까지 지켜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당시 해경의 주요 책임자들은 줄줄이 승진하였고 결국 지금 돌이켜보면 그 누구도 수백 명이 사망한 이 사건의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또한, 메르스 사태에서도 결국 질병관리 본부의 관리 부실로 인해 사태가 커졌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관리 부실에 대해 사과하기보단 대응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아닌 국무총리실이라고 책임을 넘기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개성공단 사태’, ‘국정원 NLL 회의록 공개’, ‘채동욱 뒷조사 청와대 개입’ 등 정부와 관련된 큰 사건들의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마땅한 해명 없이 순방길에 오른다. 이것은 국민에게 책임 회피를 위한 도피성 순방이 아니냐는 비판만을 가져올 뿐이다. 리더가 항상 옳은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한 결정이 결론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에서 당당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소통
유정호 : "신은 전란 중에도 백성을 살피신 어지신 대군을 기억하고 있나이다. 허나, 지금의 전하는 그 때의 전하가 아니옵니다. 간신의 소리에 귀가 닫히고, 여인의 치마폭에 눈이 먼 폭군일 뿐이옵니다."
신하들 : "저, 저, 저 놈이! 어찌 저 놈이, 전하의 면전에서..."
하선 : "그래서 어찌했소? 반역을 꾀하였소? ... 그럼? 군사를 모았소? ... 그럼 뭘 했소?"
유정호 : "'귀를 열고 들으시라. 들으시라' 소리쳤습니다.
-영화 ‘광해’ 대사 中-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소통일 것이다. 예전 왕들은 지방 곳곳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을 읽으며 백성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또한 항상 국민과 소통하며 민심을 이해하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자신을 비판하는 것일지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에서 미흡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2016년 새해 대국민담화 때 대통령의 기자 회견을 위한 대본이 사전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모든 질문과 답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질문하는 기자들은 정부에 우호적 입장에 있는 언론사들의 기자였다. 국민은 이토록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질문만 하는 기자회견에 대해 많은 실망을 했다.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히 명절 때마다 민생 현장에 나가는 것만이 소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과 이념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만나 정책에 관해 얘기해보고 다양한 기자를 통해서 자신의 국정 운영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다음 몇 가지 사건을 통해서 역시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점을 보여왔다. 얼마 전 사드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소통의 단적인 예이다. 사드란 미국의 고도의 지역 방어체계로,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로부터 방어해주는 무기이다. 이 사드란 무기가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무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성주군민들과의 이렇다 할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무기를 그들의 거주지 주변에 설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주군민들을 분노에 끓게 하였다. 정부는 사드 무기를 설치하기에 앞서 성주군민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선행했어야 했다. 성주군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나서야 뒤늦게 황교안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등이 성주로 가 성주군민들과 얘기를 나눠 보려 했지만, 이미 그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사드를 설치한다고 발표하기 전에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국민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하였다면 이렇게까지 성주군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협의를 통해 인도적 차원의 지원으로 10억엔 재단 설립을 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내렸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런 큰 결정을 내리면서도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시도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일방적인 합의 통보 후 고위 정부 관료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가 이해를 구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의 치욕스러운 부분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가 10억 엔으로 끝나버렸다.
정부와 국민의 소통은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그 나라가 얼마나 상호 작용을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소통은 사회적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소통은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적 소통이었다. 이런 일방적 소통은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 국민의 큰 지지를 얻기 힘들다.
[4]
포용성
역사적으로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왕들은 대부분 백성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항상 자기 주변에는 자신에게 직언해주는 사람보단 감언으로 꾀는 사람들을 두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포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국회법 개정안 법안에 반대하는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 대표에게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입법부 여당 원내대표를 압박하였다. 여당 내의 친박계 의원들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을 떠받들며 유승민 대표를 몰아 세웠다. 결국, 입법부 원내대표인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께 공개 사과를 한다.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도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리더란 자기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내칠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감싸줘야 한다. 이것은 비단 포용성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삼권분립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 존 맥스웰이 쓴 “리더십 불변의 법칙” 책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항해의 법칙을 성공적으로 실천하려면 자신의 성향을 알아야 한다. 만약 잘 알지 못한다면, 믿을 만한 친구와 동료들에게 부탁하라, 그리고 팀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합류시켜야 한다.” 때론 자신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보단 비판하는 사람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과 바라보지 못했던 시각을 자신의 반대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 지지기반인 대구, 경북 지역에서조차 지지율이 예전만큼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다. 사드 문제로 떠들썩했던 성주군도 박근혜 정권의 지지가 절대적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에서조차 현재 박근혜 정권이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가 위에 언급한 리더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두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리더는 왕이 아니다. 리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이끄는 조직을 가장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리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혼란의 연속이다. 흉악 범죄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고, 정부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 비리 사건은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솔직한 모습, 책임감 있는 모습을 원한다. 때로는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국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혼란 정국의 대한민국 속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로서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1] http://www.venturesquare.net/
[2] http://cfile25.uf.tistory.com/
[3] http://ph.idomin.com/news/
[4] http://cfile221.uf.daum.net/
내용 참고:
[1] http://www.huffingtonpost.kr/
[2] http://news1.kr/articles/?
[3] https://www.hankookilbo.com/v_
[4] http://www.mediatoday.co.kr/?
[5] http://www.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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