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욱더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예술은 지루하고 고루한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스토리텔링과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이미지의 구현은 시각예술의 주요 역할이자 과제였는데, 이러한 스토리와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영상, 컴퓨터그래픽, 사진과 같은 매체들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고, 예술은 그것을 찾는 사람들만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감상해야 하는 접근성과 흥미로움, 대중성이 떨어지는 매체가 되어버렸다. 예술은 그 학구적인 기반과 지식인들의 옹호 아래 고상한 문화로서의 위상은 지키고 있지만, 과거와 같이 인간에게 있어서 제1의 매체였던 예술의 전성기는 지난 것 같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이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루한 예술에서 벗어나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기 위한 예술과 기술의 조우가 불가피해 보인다.
[2] Andy Warhol, Campbell’s Soup Cans, 1962
[3] 백남준, TV 부처, 2002
이와 같은 경향을 읽은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에 이러한 트렌드를 융합시키고자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이러한 시도는 넓은 개념으로 포용하여 “미디어아트”라고 할 수 있는데,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매체를 예술에 도입한 것으로서 잡지, 신문, 만화, 포스터,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되는 예술을 일컫는다. 미디어아트는 광범위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미디어아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위의 정의는 넓은 의미의 정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예로는 미디어아트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앤디 워홀이 대표적이다. 그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대량소비사회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타블로이드 사진을 이용한 실크스크린으로 자신의 작품을 대량생산하였다.
좁은 의미의 미디어아트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보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행위를 일컫는 것이며 기존 미디어아트와는 차별적으로 뉴미디어 아트 혹은 디지털 미디어아트라 불리는 영역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로서의 미디어아트의 대표적인 예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의 이미지를 비디오 영상과 함께 디스플레이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컴퓨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예술의 가장 혁신적인 특징은 그것의 쉬운 접근성과 관객이 수동적으로만 수용하는 작품이 아닌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그 작품을 감상하고 가질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작가와 감상자가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인터렉티브 아트 (Interactive Art)라고 한다.
미디어아트는 당시 사회의 지배적이고 기술적으로 새로운 매체들을 쫓아간다는 점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던 앤디 워홀의 대량생산과 백남준의 비디오 제작은 이젠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시대에 뒤진 기술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기하급수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new’한 미디어아트는 무엇일까?
미디어아트는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닐뿐더러 현대 미술관이라면 빠질 수 없는 파트가 되어버렸지만, 아직은 우리가 ‘예술’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예술의 범주 안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나 자신도 수많은 미디어 아트들을 봐 왔지만, 예술에 기술이 적용된 형태가 신기하여 잠깐의 시선을 끌 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처럼 몇 년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날 만큼의 영감을 주는 작품은 접하기 어려웠다. 내가 기술에 무지하고 전자제품이라는 자체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아서 미디어아트에 거부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지난겨울, 한 기계를 접하고는 미디어아트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4] Google의 Cardboard
지난겨울, 전자 회사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께서 아주 재미있는 기계를 들고 왔다며 한껏 들뜬 얼굴이셨다. 아버지께서 꺼내신 건 나의 기대와 달리 근사하고 멀끔한 기계가 아닌 종이 덩어리였다. 도대체 이걸로 무얼 할 수 있는 것일까 싶을 때 아버지께서 이 종이 덩어리가 구글이 만든 보급형 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기기라며 내 머리에 씌워 주셨다. VR이라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접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가장 기본적인 텐츠의 VR을 체험하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내가 우리 집 부엌에 가족들과 앉아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방황하며 그곳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VR이 우리의 인지능력에 얼마나 몰입도 있는 영향을 주는지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VR에 대해서 더 찾아보게 되었고, VR이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매체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예술계의 흐름에 한 주축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Virtual Reality (가상 현실)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VR의 사전적 정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컴퓨터 기술로 실제와 같은 이미지, 소리, 그리고 다른 감각들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모방한 환경을 재현하는 것, 그리고 사용자가 그 공간과 그곳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공간 안에서의 사용자의 신체적 현존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복잡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쉽게 말해서 사용자가 가상의 공간 속에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VR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군대에서의 전투 훈련, 의료상의 기술 훈련, 비디오게임, 디자인, 그리고 예술적인 작업에 사용되고 있다. VR로 체험하는 비디오 게임과 영화가 상업적인 수익을 올리기 쉽고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만큼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고 있지만, 나의 이목을 끈 것은 앞서 말한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신세대 예술가들이 VR을 어떻게 예술에 적용하고자 하느냐였다.
VR 자체를 도구로 하여 전혀 새로운 예술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VR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가상현실 기기 중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오큘러스 리프트”가 올해 3월부터 정식 배송이 시작된 걸 보면 가상 현실 기기가 상용화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가들이 VR을 예술에 적용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한 공간 속을 VR 기기를 통해 경험하는 형태와 VR을 통해 본 가상의 공간 속에서 예술가가 직접 만들어낸 작품을 경험하는 형태이다.
기존의 예술작품들을 3D 공간으로 재현하여 관람객이 그 속을 걸어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첫 번째 형태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예술작품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떨어지고 작품의 탄생 과정에 기술적인 부분이 지배적이라는 데에서 예술적인 의미와 가치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VR이 정말로 기존의 예술계에 큰 변동을 불러일으킬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이 직접 가상 현실의 공간에 들어가 기술적인 제약과 가상 현실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아래에서 적절한 창의성을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가 주요 과제이다.
가상 현실 자체를 도구로 하여 예술가들이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한 주요한 계기는 구글이 Tilt Brush를 출시하면서부터이다. Tilt Brush는 가상 현실 앱으로 HTC VIVE라는 VR기기와 연동되어 사용될 수 있으며, VR 기기를 통해 본 삼차원의 공간 안에서 원하는 형태를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린다’는 것은 평면적인 종이나 캔버스 위에 이차원적인 형태를 그린다는 의미로 통용됐지만, Tilt Brush를 통해 그린다는 것은 온몸을 움직여 우리의 손짓 자체가 형태가 되는 것이며 어떤 이들은 이 행위를 그림을 조각한다 (“Sculpting your drawing”)이라고 표현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재료인 불이나 별과 같은 것들로 그릴 수도 있으며, 평면적인 작품이 아닌 설치미술과 같이 관람객이 작품을 삼차원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VR 기기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는 비견할 수 없겠지만, 말로서 작품 탄생의 과정과 그 결과물을 설명하기 힘든 개념인 만큼 동영상을 통해 예술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가를 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전시공간 자체를 VR로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Dotdotdas라는 스튜디오와 Damien Gilley라는 설치미술 아티스트는 포틀랜드의 Hap Gallery 자체를 VR 아트쇼의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들은 복잡한 형태가 아닌 직선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VR을 이용한 삼차원 드로잉이 예술가들이 원하는 만큼 섬세하지 못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공간감을 관람객에게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성공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VR은 우리를 표면적인 감각의 자극이 아닌 우리가 그 공간 자체에 존재하는 듯한 몰입도 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공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인 것이며 예술과 미디어 산업이 인간사회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VR은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여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보다 생동감 있게 실현하게 해줄 수 있는 매체이지만 VR 자체를 도구로 하는 예술 작업은 이제 갓 시작된 신생 단계이다. 기술적인 트렌드에 밝은 소수의 모험적인 예술가들이 VR을 이용한 작업에 뛰어들긴 했지만 아직은 미학적인 가치가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킨다기보다는 어떤 작업이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단계인 듯 보인다. VR을 이용한 예술이 기존 예술계의 인정을 받는 순수예술 장르의 하나로 인정받는 것은 예술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원하는 만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기술적인 발전과 예술가들이 유의미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두 가지 방면 모두에 달려있다. 예술가들이 VR이라는 매체 안에서 그것만의 표현방식을 찾아내고, 기존 미디어의 역할에서 벗어난 미지의 영역을 잘 발굴해 내어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면 VR을 이용한 예술의 장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은 언제나 그 사회를 반영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VR은 어쩌면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최첨단으로 반영하되 예술과의 융합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VR과 예술의 조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기대해 본다.
출처:
[1] http://www.thememo.com/2015/11/24/virtual-reality-vr-gaming-vr-porn-millennial-generation-z/
[2] https://en.wikipedia.org/wiki/Campbell's_Soup_Cans
[3] http://article.joins.com/news/blognews/article.asp?listid=13135287
[4] https://store.google.com/product/google_cardboard
'EDITORIAL > 문화 & 예술 :: Culture &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Music Therapy: A New Age of Psychology (0) | 2016.11.29 |
---|---|
<눈길>: 만주 위안부에서 고향집까지 (0) | 2016.11.23 |
Is Classical Music Dead? (0) | 2016.11.01 |
음악과 회화 사이의 긴밀한 관계: 음악이 보이다 (0) | 2016.10.29 |
[500일의 썸머] 운명을 믿으시나요? (0) | 2016.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