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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눈길>: 만주 위안부에서 고향집까지



바로 여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금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북가주의 한국계·중국계·필리핀계 단체들이 협동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자 소녀상 기림비를 건립할 계획에 착수해 있는 것. 중국 인사들과 함께 상하이에 세운 소녀상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해외에 건립된 소녀상 기림비가 모두 한국계 단체들의 주도로 세워졌다. 그러나 내년에 완성될 것으로 예정된 샌프란시스코의 소녀상 기림비는 한국계뿐만 아니라 중국계와 필리핀계 사회가 한데 뭉쳐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가 처음 기획된 지난해 9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각종 일본계 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기림비 및 소녀상 건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남가주 글렌데일에서 시작된 소녀상 건립 운동의 소망이 국가적·문화적 경계를 초월한 결실이었다. 그리고 올해 8월, 소녀상 기림비 건립에 필요한 예산 4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모금액이 마련되면서 이제 위안부를 비롯하여 전쟁 중에 일어났던 각종 인권유린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더 광범위한 사회단위를 발판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단순한 모금활동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 또한 이어졌다. 바로 어제 11월 21일 저녁, 산호세 쿠퍼티노 AMC 극장에서 샌프란시스코 소녀상 기림비 건립을 기념하여 단편영화 <눈길>을 상영했는데, 객석을 가득 채워 중간에 더 큰 상영관으로 옮길 뻔할 만큼의 인파가 몰렸다. <눈길>은 올해 초 KBS에서 광복 7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2부작 드라마로 어린 두 여배우 김새론과 김향기가 주연을 맡아 위안부에 끌려간 두 소녀의 우정을 그려낸 이야기이다. 방영 당시에는 시청률이 5%에 그쳐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귀향>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로 방영 이후 더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눈길>은 작품성으로 보더라도 역사적 논쟁의 소용돌이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이해를 돕는 통로의 역할을 다분히 해낸 작품이다. 위안부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고 있지는 않은데, 이 독특한 구조를 통해 현재형으로 이어지는 어느 할머니의 삶 속에 역사의 한 조각을 감동적으로 녹여냈다. 정치적인 상황으로만 접하던 우리 역사에 인간적인 차원으로 깊이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눈길>에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한 번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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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은 위안부 할머니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꿈 많은 소녀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시대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꿈을 잃고 삶을 잃어가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그 소녀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서울 종로의 지하 단칸방에서 뜨개질로 근근이 생활하는 최종분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런 할머니 곁에 등장한 불량소녀 장은수까지 두 명이다. 이 둘은 시간을 거슬러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할머니의 꿈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압박 아래 깨어졌고, 은수의 꿈은 21세기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서 짓밟혔다. 1944년의 종분과 영애도―어쩌면 은수처럼, 그리고 은수도 그녀들처럼―한창 철없고 꿈 많을 나이였지만 어른들의 보살핌을, 사회의 보살핌을, 나라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그 꿈을 강탈당하고 만다. 그래서 종분 할머니는 경찰서에서 은수에게 손찌검하는 40대 아저씨와 은수를 탓하는 경찰에게 격분한다. 영화에서는 종분 할머니가 경찰을 밀치며 은수와 함께 유치장에 갇히게 되는 씬으로 그 분노를 코믹하게 승화시켰다. 그렇지만 종분 할머니와 은수에게 가해진 사회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은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고, 그녀들의 잃어버린 꿈과 삶 또한 그대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한때 종분 할머니에게도 잔소리쟁이 엄마와 하나뿐인 남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번듯한 집안의 공부 잘하던 소녀 영애를 동경했고, 그녀의 오빠를 몰래 좋아했던 평범한 사춘기 소녀였다. 동갑내기 영애에게도 목화솜으로 따뜻한 이불을 누벼주는 어머니와 멋있고 듬직한 오빠가 있었다. 학교 선생이 되고 싶었던 영애는 일본군 아래 신민 양성 학교에 다녔고 학교에서도 우등생에 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해주겠다며 그릇을 팔러 간 사이, 종분의 집에 정체 모를 무리의 남자들이 쳐들어온다. 그들에 의해 끌려간 종분은 영문도 모르고 기차에 탑승하게 되고, 같은 기차에 영애 또한 끌려들어 오게 된다. 그 기차의 종착점은 다름 아닌 만주의 위안소. 그곳에서 종분과 영애는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삶을 포기할 지경에도 이르렀다가 고향에 돌아갈 희망 하나만으로 버티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한 일본군이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으며 종분과 영애를 제외한 모든 위안부 소녀들이 사살당하고, 간신히 탈출한 종분과 영애는 만주의 눈길을 헤쳐 고향 집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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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영애는 도망치기 직전 일본군의 총에 맞아 걷는 도중 피를 많이 흘리다가 눈밭에서 숨을 거둔다. 죽기 직전까지 눈을 만지며 어머니가 누벼주시던 목화솜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영애. 그런 영애를 위해 종분은 “영애야, 춥지?” 하며 서럽고 절박하게 죽은 영애의 몸 위로 눈을 덮어준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묻어줄 수도 없는 영애를 위해 종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차가워도 목화솜을 닮아 폭신폭신한 눈을 흩뿌려주는 것뿐. 그 절망적인 몸부림 끝에 종분은 영애가 쥐어준 위안부 여성들의 사진 한 장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걷고 걸어 고향 집에 간신히 도착했지만, 이미 어머니와 남동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완전히 혼자가 된 종분은 마을에서 보조금을 준다는 소식에 회관을 찾아가지만,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종분에게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방법은 일본으로 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영애의 이름을 빌리는 것 뿐이다. 그렇게 종분은 “친구의 이름을 팔아서” 위안부에 다녀온 여성들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는 충청도 고향을 떠나 강영애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영애를 죽인 그 총알조차도 사회의 결과이지 한 개인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총을 쏜 일본군은 영애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줬다가 혼난 적이 있는 병사였다. 또 그는 위안부 여성을 모두 사살하라는 장교의 명령을 듣고 나서 좌절한다. 자신은 순수한 목적으로 단지 집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게 군에 지원했을 뿐이라며 울부짖는 모습을 영애가 목격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은 총을 쏘는 순간에도 나타났는데, 한 소녀를 쏘고 사방에 튄 피를 보며 얼어붙은 몸과 표정이 그것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서 있던 그를 지나쳐 도망친 영애를 기어이 쏘고야 말게 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 일본군으로서의 신분이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 그 처지에 그를 가둬놓았던 당시의 사회적 압박들이 총을 쏜 것이다. 결국, 영애를 죽인 일본군도 종분 할머니와 은수처럼 그가 살던 시대에 꿈을 빼앗긴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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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라던 종분 할머니의 말처럼, 그래도 종분 할머니와 은수는 망가진 과거를 뒤로하고 처음부터 다시 꿈을 쌓고 삶을 조각한다. 사회에서 가장 나약한 듯 보이는 미성년의 여자아이와 늙은 할머니이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강하게 살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필자는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구민회관 공무원들과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눈에는 골칫덩어리로 비쳐졌으나, 할머니와 은수는 사회가 내치고 보살펴주지 않는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할머니는 은수의 손을 꼭 잡아주며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은수도 할머니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은수를 보면서 할머니는 70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것들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식으로 은수의 보호자가 됨과 동시에 마침내 오랫동안 빌려 쓴 영애의 이름을 돌려주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은수라는 거울을 통해 부정해왔던 자신을 찾아내고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내며 영애와의 우정도 매듭지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은수를 이용하고 방치한 어른들을 향해, 그 시절 자신을 짓밟았던 일제의 횡포를 향해 그동안 묵혀왔던 분노를 끄집어낸다.


사회적으로 방치된 소녀 은수와 역사적으로 방치되었던 소녀 종분은 닮은 점이 많다. 우리도 그렇다. 일본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조차도 귀 기울여주지 않던 위안부 문제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외면받는 청소년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과거의 실수와 현재의 실수가 이렇게나 많이 닮아있다고, <눈길>은 강조하고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도 반성하고 되새기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달라보일지 몰라도 그 이면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종분 할머니의 삶이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은수를 만나 완성된 것처럼, 우리의 역사 역시 절대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종분 할머니에게도 일생을 걸려 되찾은 자신이고 새로 쌓은 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앞장서서 역사의 현재형을 완성하고자 노력하는 분들께 우리는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이제는 샌프란시스코가 보여준 기적을 우리도 함께 응원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진:

[1] http://m.blog.naver.com/haru0489/220291553249

[2] http://www.instiz.net/pt?no=2762586&page=2

[3] https://www.wadiz.kr/Campaign/Details/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