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지옥과도 같던 폴 팟의 크메르루즈 정부가 종결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앙숙으로 남아있던 베트남이 침공을 해온것이었다. 보다 현대적이고 첨단화된 베트남군에게 크메르 루즈의 군대는 상대가 되질 못했고, 크메르 루즈 정부는 얼마 안되어 무너져 내렸다.
크메르 루즈가 없는 캄보디아에는 다시한번 정치적 배큠이 찾아왔다. 이 배큠을 훈 센 이라는 사람이 메꾸게 되는데, 훈 센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도왔던 전 크메르루즈 간부였다. 베트남군은 침공을 성사시키는데 기여를 한 훈 센에게 새로운 캄보디아공화국의 주요 직책들을 맡겼고, 훈 센은 현재까지도 캄보디아공화국의 총리로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캄보디아 공화국의 대외적인 입장은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바로 UN 에서의 입장과 현 정부의 입장차이 때문이었다.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즈 정부때부터 UN 참가국으로서 대외적인 입지를 갖춘 상태였는데, 캄보디아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UN의 캄보디아 대표가 바뀌질 않았기 떄문이다. 그로 인해,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던 온갖 반인류적인 행위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려 할때할 때, 전 크메르루즈 UN 대사가 반기를 들며 막을수있었고, 1991년, 구 소련의 붕괴가 일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UN 안보리의 결정으로 인한 UNTAC (United Nation Transitional Authority in Cambodia) 같은 기관이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 UNTAC 은 현대적인 기준에서 심하게 뒤쳐져 버린 캄보디아에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할수있도록 협력해주려는 목적을 띄고 있었다.
이런 캄보디아를 향한 구호적인 움직임들로 인해 캄보디아는 깊은 상처를 딛고 조금씩 재건되어지고 있었다. 이런 현대사회의 재구축을 향한 분위기 속에서 한가지 심히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난 크메르루즈의 잔학했던 인류를 향한 범죄행위들에 대한 깔끔한 마무리가 되고있질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Genocide Convention 에 의한 인류말살행위에 대한 정의는 이러하다.
Genocide is the deliberate and systematic destruction, in whole or in part, of an ethnic, racial, religious, or national group. (UN 1948)
대량학살은 인종적, 종족적, 종교적, 그리고 민족적인 총체적, 혹은 부분적인 대상을 향한 고의적인 파괴이다.
캄보디아에서 행해졌던 학살은, 어떻게 보면 인종적인것도, 종교적인것도, 민족적인것도 아닌 정치적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리 간단히 죄를 물을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군들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 같은 사건으로 인해 명명된 정의인지라, 인종, 종교적 배경에만 무게가 두어진 것이었다.
또한 크메르루즈 정권에서 실권을 행사했던 최고층 간부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투병중에 있어서, 그들에 대한 재판 역시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와중에, 캄보디아는 훈 센 같은 전 크메르루즈 간부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 과거를 묻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그의 발언은 당시 상처받고 고통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배신하는 발언이었다.
"If we bring them to trial, it will not benefit the nation, it will only mean a return to civil war, ... We should dig a hole and bury the past and look toward the future."
"만일 그들을 재판하기 된다면, 그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내전을 불러들이게 될것이다. 우리는 큰 구멍을 파서 과거를 묻고,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가야할것이다."
- Hun Sen
현재도 캄보디아 내에서 권력을 잡고있는 전 크메르 루즈 관계자들은 지난 날 자신들이 자행했던 흉악한 범죄행위를 부정하고, 오히려 1979년의 베트남 침공을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공격으로 치부하며 자신들을 피해자로 몰아가고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폴 팟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캄보디아 국민들이 많다. 킬링필드 같은 사건이 존재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만들어낸 허구성 이야기라며 부정하는 사람들마저도 있다. 수도 프놈 펜의 땅에는, 몇백만명의 피와 눈물이 스며들어 있고, 아직도 Toul Sleng 전 감옥에 가면 뼛조각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아, 방문객들로 하여금 뼛조각을 줏으면 넣어달라는 회수함까지도 있다. 너무나 아이러니 하다. 역사의 희비가 교차하는 나라, 앙코르 와트로 상징되는, 중세시대의 위엄했던 크메르 제국의 찬란했던 영광과 위대함이 소수의 야욕이 당긴 총성과 학살로 인해 더럽혀진 나라. 싸고 좋다고 들뜬 마음으로 놀러가는 수많은 대한미국 동남아 여행객들이, 앞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할 때 1975년 봄에 일어났던 절규를 회상하게 일말의 엄숙함을 간직할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完)
By 안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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