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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IMF 기준 경제력
세계 11위에 위치해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급성장을 이루었고, 대한민국에
원조를 해주던 필리핀을 넘어 현재는 캐나다와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급성장의 과정과 분단 국가의 현실로 인해 생겨난 부작용들이 2017년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경제적 급성장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되어 갔고, 남녀불평등 문제에서도 임금 불균등을 비롯, 직장 내 승진 비율 등의 지표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성장했으나, 비슷한 경제 규모에 있는 타 국가들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떨어지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도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모여 페미니스트 운동을 사회 곳곳에서 펼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최초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1848년 7월 19일 Seneca Falls Convention 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과 참정권 부여를 이뤄내기 위한 페미니스트 운동은 1920년 8월 18일, 개정 헌법 19조로 인해 마침내 목표가 달성되기까지 피를 흘리며 전개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천년간 지속된 남성 우월주의 사고관과 사회적 불균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금도 치열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는
미국과 조금 달랐다. 1948년, 해방 이후 실시된 첫 번째
선거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이 사회 진출하는데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으나, 오랜 시간 한반도를 지탱해 온 유교적 사고관과 분단의 현실이 만들어낸 ‘징집제’가 여성의 발목을 붙잡았다. 능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이전 세대의 부모들은 딸이 집을 떠나 공부하는 것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았고,
아들에게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이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상명하복식 조직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경험한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신장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다.
물론, 대한민국의 남성은 본인 인생에서 가장 빛날 젊은날의 2년을 최저임금의 10%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자유를 구속당한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존재했던 군 가산점 제도마저 사라졌기 때문에 남성의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세계 2차 대전 중이었던 1940년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징집제에 차출된 인원들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만들었던 가산점 제도와 혜택이 강화되어 현재에도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그저 불만만 토로할 뿐이다. 군 복무의 경험 덕분에 회사들이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군인들의 혜택이 될 수 없으며, 고쳐져야 할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이 범주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이해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엇갈리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 시기는 남성보다 약 3년 정도 빠르지만, 직장 내에서 승진문제에 좌절하거나 결혼 시점에 남성들이 겪지 않는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다수의 여성이 직장 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첫 발을 딛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판국에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무대에 등장한 극단주의 성향의 커뮤니티들로 인해 페미니스트 운동과 남성 인권신장 운동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시대 등의 극단적 성향을 가진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남성을 통째로 비하하고 여성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몇 가지 극단적 사건들을 예로 들어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결론짓는 형국까지 이르렀다. 남성 우월주의의 색채를 가진 일간 베스트를 비롯한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김치녀로 비하하며, 여성의 인권 신장과 역차별의 문제를 가지고 여성계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헐뜯고 있다.
무식한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러한 극단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극적인 어조로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댓글에서 여론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편을 가르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권리 신장과 사회에서의 완전한 남녀 평등을 지향한다. 페미니즘의 종착역은 한 집단의 우위가 아닌, 양성의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여 차별 받는 사람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바람직한 페미니즘의 모습이란, 직장 내의 불합리한 대우 개선과 사회 전반에 팽배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위, 탄원, 그리고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 제공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일깨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범국민적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는 그에 따라 마땅한 역할을 맡게 된다.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에 몇 가지 예시를 들며 그게 전부인양 일반화시키거나,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편 가르기 싸움을 조장하는 것은 페미니스트 운동이나 남성 인권신장 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남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여성도 존재하지 않고, 같은 인간이라는 종족 안에 상부상조하는 공생관계이다. 오랜 세월 가부장적 제도 아래 여성이 억압 당했다고해서 역으로 상대를 억압한다면, 그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우리의 부모님은 대한민국의 남성과 여성으로 인연을 맺어 지금의 우리가 탄생했다. 그들의 배경이 어떠하였든,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왔다. 우리가 비난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닌 사회 제도와 사회 문화이다. 거저 받은 것은 잃어버리기도 쉽다. 미국, 서유럽, 북유럽 국가들은 오랜 시간 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사이의 이해관계 구도와 사회 제도는 국민적 공감을 사며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사회구성원들 역시 그 소중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국민성이나 사회문화 수준의 발전이 경제적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서방에서 들여 온 제도는 존재하나, 국민 의식은 그에 맞게 바꾸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부정적 결과물들이 산출되었다. 값 없이 받았으면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권리를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생각한다.
사회적 공감대는 서로의 이해관계와 현실에 따라 긴 토론, 수 없는 피드백, 반복된 여론 조사 등을 통해 서서히 움직인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이 갈등의 골은 쉽게 헤쳐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서로의 처지에 본인을 대입하여 반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고민하다 보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결과물이 산출 될 것이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롤모델로 삼을만한 특정한 나라가 없다. 분단의 현실을 가진 나라도 없으며, 대한민국처럼 급성장을 이룩한 나라도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새 역사를 개척하는 것이다. 외형은 많이 성장했으니, 이제 속을 들여다 볼 차례가 왔다. 상처가 나고 곪은 곳이 있다면 국가와 국민이 힘을 합쳐 그 상처를 치유해야만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 사회 관습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선진 국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사진출처:
[cover]: Hanna Barczyk, https://www.nytimes.com/2017/01/09/opinion/paths-for-feminism-after-the-elec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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