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AMA)와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에서 BTS는 각각 3관왕과 4관왕에 등극하면서 역사를 써 내려갔다. 특히 AMA에서는 아시아 그룹 최초로 대상인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또한 작년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그래미 상 (GRAMMY Awards)의 "최고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 후보에 올랐다.
정보와 매체가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서 BTS, 블랙핑크, 그리고 K-POP의 성공신화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탄 운 좋은 성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이들의 성공을 뒤받쳐준 것은 사실이다. LP, 카세트테이프, CD 등의 물리적 형태의 음반을 구매하고 직접 오디오 기기를 사용해 음악을 들어야 했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애플 아이튠즈,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음악을 찾아서 마음껏 들을 수 있다. 또한 이제는 유명 음반 잡지나 평론가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효과적인 홍보가 가능 해졌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은 K-POP의 특수성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시대적 이점을 활용할 기회는 모두에게 있었는데 왜 J-POP, 인도 팝, 프랑스 팝이 아닌 K-POP이 세계적인 신드롬이 되었을까?
강남스타일, 세계를 뒤흔들다
2012년 말, 세계에는 “강남스타일” 열풍이 불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에 맞춰서 말춤을 췄고 이들의 춤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공유되면서 “강남스타일”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으며 유튜브 최다 조회 수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무려 5년 동안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 1위 자리를 지켜냈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의문이기도 했다. 싸이는 국내에서는 이미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가수였지만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즉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싸이의 인지도와 무관하게 온전히 곡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강남스타일”은 탄탄한 구성의 일렉트로닉 댄스 곡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눈에 띄는 특징을 갖고 있는 곡도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을 성공으로 견인한 요소는 탄탄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에 얹어진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안무, 그리고 재밌고 신선한 뮤직비디오였다.
안타깝게도 싸이의 국제적 성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의 후속 곡들은 “강남스타일”의 여파로 어느 정도의 인기는 얻었지만 싸이는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혔고 사실상 “강남스타일”의 가수, ‘원 히트 원더’로 남게 되었다.
강남스타일이 남긴 메시지와 서구 영어권의 주류 음악
세계 대학 랭킹 상위권에 미국과 영국의 대학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에는 그 대학들의 역사와 성과도 있지만 이들의 서구적 배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세계의 중심에 있는 영어라는 언어의 영향도 크다. 영어를 할 줄 안다면 다른 언어를 추가적으로 배울 필요 없이 대부분의 학술적 자료들을 읽을 수가 있다. 이 자료들이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 있었거나 그렇지 않아도 영어 번역본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언어로 어떤 분야에 서든 심도 있는 공부나 연구를 하려면 언젠가는 다른 언어로 쓰인 자료를 맞닥트리기 마련이다.
영어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음악 시장과 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 세계인들이 모두 알 만한 비틀즈, 퀸,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굵직한 뮤지션들은 물론 현재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등의 뮤지션들까지 모두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 출신의 영어로 노래하는 뮤지션들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매우 뛰어난 뮤지션들이다. 이들의 음악적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비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서 다른 언어로 음악 활동을 했다면 이들이 누리는 인지도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조용필, 이선희, 서태지 같은 한국 음악계의 거장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 음악 활동을 했다면 세계적인 스타들이 되지 않았을까?
모두 의미 없는 가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가사는 노래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다. 가사는 노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다. 이 메시지를 이해함과 이해 못 함은 리스너의 입장에서 너무 큰 차이를 가져온다. 또한 굳이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더라도 언어는 리스너들이 쉽게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한다. 가사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가사로 쓰여 있다면 리스너들의 집중력과 흥미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어를 전 세계인들이 편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다른 언어보다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영어 노래의 출발선은 상대적으로 더 앞에 있을 수밖에 없다.
“강남스타일”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비영어권 노래들인 로스 델 리오 (Los del Río)의 “Macarena”나 오존 (O-Zone)의 “Dragostei Din Tei”의 공통점은 가사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댄스 곡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EDM 시대를 이끌었던 비영어권 프로듀서들의 성공을 설명하기도 한다. 스웨덴의 아비치 (Avicii), 프랑스의 다비드 게타 (David Guetta), 네덜란드의 마틴 개릭스 (Martin Garrix)는 보통 가사를 요구하지 않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팝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접목하면서 필요에 따라 영어권 보컬리스트와 협력하여 전 세계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알로에 블락 (Aloe Blacc)이 참여한 아비치의 “Wake Me Up”, 시아 (Sia)가 참여한 다비드 게타의 “Titanium” 등.
비영어권 뮤지션들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어권 대중음악과 대중문화를 돌파하기 위해서 비언어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기존의 영어권 보컬리스트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전자는 폭발적인 인기를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고 후자는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들에게만 해답을 주었다.
K-POP, 장르가 되다
한편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보고 가능성을 본 것인지 국내 대형 기획사들은 “강남스타일”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새로운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이어 나갔다. 해외 프로듀서들이 국내 곡작업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기존 K-POP 그룹들의 특징이자 강점이었던 안무와 시각적 연출을 더더욱 날카롭게 다듬었다.
이와 함께 기존 2세대 K-POP 그룹들의 주 해외 활동 무대였던 일본과 중국을 넘어서 동남아와 중남미까지 진출하며 발판을 넓혀갔다. 또한 같은 시기에 확장하고 있던 영화, 드라마 등의 기타 매체들과 상호작용하며 서구 영어권의 음악과 문화적 영향력을 연상시키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2019년, BTS는 “Closer” 이후 주가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던 할시 (Halsey)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통해 콜라보를 성사시키면서 빌보드 차트 8위에 안착, 영어권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2018년 “Fake Love”부터 이미 가사에서 영어의 비중을 늘려가던 BTS는 2020년, 2021년에 영어 가사로만 구성된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를 모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렸다. 특히 “Dynamite”와 “Butter”는 24시간 이내에 유튜브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고 다시 직접 갱신하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이뤄냈다.
K-POP의 특별함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
BTS를 필두로 한 K-POP은 비영어권 뮤지션들의 전략을 복합적으로 접목하여 전무후무한 트렌드와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직접 영어로 가사를 쓰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서구 영어권 음악을 한참 상회하는 뛰어난 안무와 시각적 연출과 기획을 바탕으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에 영화, 드라마, 음식 등 문화적인 배경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곡, 또는 뮤지션의 일시적인 성공이 아닌 세계적 바람을 일으켰다.
유럽의 마에스트로, 스트로메 (Stromae)는 뮤지션으로서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지만 그의 음악적, 문화적 영향력은 유럽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중남미 스페인어권의 배드 버니 (Bad Bunny)나 대디 양키(Daddy Yankee), 그리고 압도적인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와 중국의 뮤지션들은 각자의 문화권 내에서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뽐내지만 세계적인 확장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반면 K-POP과 한국 문화는 이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남미에서 기존의 서구 영어권 음악, 대중문화와 동급, 또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세계적인 기반의 뿌리, 유럽과 미국에까지 서서히 진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세계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의 주축이었던 서구 영어권과 비교하면 K-POP은 아직 신생아지만 그 성장 속도와 형태는 굉장히 이례적이며 놀랍다. 무엇보다 K-POP의 바람은 일시적인 성공이 아닌 기존의 문화적 질서를 바꾸고 있는 신드롬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미지 출처
<1>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6050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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