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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비긴 어게인> - 길 잃은 별들과 음악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2013). 명화로 손꼽히는 원스’ (Once) (2006)를 탄생시킨 존 카니 (John Carney) 감독의 또다른 음악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영화다. 2013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이후 파급력 있는 흥행을 거둬 올해 한국에서도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의 원제가 “Can a Song Save Your Life (음악이 사람의 인생을 살릴 수 있을까)”인 만큼, 음악은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이다. 캐릭터, 주제, 플롯, 사운드 트랙까지 모두 하나로 엮인다고 느껴질 만큼 음악 이야기에 충실했던 영화다. 전설적인 밴드 출신의 음반회사 경영자 댄 (마크 러팔로)이 상업화된 음악과 그것을 포장하는 자신의 삶에 질려갈 때쯤 우연히 펍에서 노래하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진정성이 담긴 음악을 듣게 된다. 그 순간부터 그녀와 그녀의 음악에 매료되어 다시 한번 음악에 매진하는 댄의 어쩌면 전형적인 재기 스토리가 곳곳에 삽입된 주옥 같은 노래들의 힘으로, 또 카니 감독의 담백한 연출력으로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래서 내가 음악을 좋아해.”

왜죠?”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도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니까. 이렇게 평범한 순간들도 음악을 듣는 순간 진주처럼 빛나지. 그게 음악이야.”

 

필자가 꼽은 비긴 어게인의 명장면이다. 경이로운 연기력이나 극적인 장치 하나 없어도 단지 그 대사가 너무나 공감하기 쉬운 말이었기에. 평범한 일상에 음악이 의미를 더해주는 것이 언제나 영화 같은일은 아니지 않은가.

 

누구나 있는 경험이다. 매일과 같은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깊게 감동해 버렸던 경험.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들은 듯 몰입되어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던 경험. 그래서 그 하루가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아버린 경험. 혹은 너무나 특별한 순간에 들었던 노래가 그 순간의 감정, 광경, 냄새와 소리까지 모든 감각을 담아내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과거의 기억에 잠겨버리는 경우까지. 각자에게 특별한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통분모이다. 음악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또 회상하는 것은 분명 카니 감독의 해석처럼 음악이 가장 따분한 순간에까지도 의미를 부여해 진주처럼 빛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리라.

 

인생에서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 진주로 만들어주는 음악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할 때 듣는 음악은 얼마나 강력하고, 또 아름답겠는가. 필자에게 있어 그 진주조개는 라디의 오랜만이죠. 꽤나 복잡했던 첫 연애. 연락이 끊겼던 남자친구와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 약간의 어색함을 안고 나란히 지하철에 앉아있었다. 그때 그가 귀에 꽃아준 이어폰에서 오랜만이죠의 첫 소절이 흘러 나오던 순간 어찌나 설레었던지. 그토록 설렜던 이유가 원체 표현이 서투른 사람이 전달하고 싶었던 말을 돌려 전할 방도를 찾은 것에 대견함을 느껴서였는지, 아니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도 우리가 겪었던 감정을 그대로 담아놓은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때의 심장 박동과 함께 그 때 보았던 미소가 떠오르고, 그 때 지었던 미소가 입가로 돌아온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필자의 달콤 씁쓸했던 연애 스토리에서 영화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두 주인공의 진주조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음악가들이기에 더 아리고 더 소중한 음악이 아니었을까 하는 곡은 바로 데이브 역의 아담 리바인이 부른 ‘Lost Stars’ 이다. 영화 속에서 그레타가 데이브에게 선물한 자작곡으로 등장하는 이 곡은, ‘길 잃은 별들이라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제목에 걸맞게 깊이 있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시기인 청춘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패기롭기만 한 젊은 나이에 주어져 헛되이 쓰여지는 이유를 신에게 묻고, 또 진정한 청춘을 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길을 잃은 채 어둠을 밝히려 애쓰는 별들에 비유한 가사가 아담 리바인 특유의 맑은 목소리, 그리고 몽환적인 멜로디와 만나 많은 관중, 아니 청중을 매료시켰다.

 

음악의 상업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일찍 얻은 부와 명성 덕에 잃어가는 자신을 깨닫지 못한 채 청춘을 보내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었기에 ‘Lost Stars’가 더욱 뜻 깊지 않았을까. 또 그런 캐릭터들을 통해 전달된 음악이고 상황이기에 관객들이 더욱 깊이 공감하고 영화에 열광한 것이 아닐까. 그레타와 데이브에게는 물론, 관객들에게까지도 ‘Lost Stars’라는 노래는 영화관에 앉아 있는 그 순간을 빛나게 해준 진주조개가 되었으리라.

 

그레타가 Lost Stars를 데이브에게 선물한 후 그녀는 그 노래를 선물 할 당시 찍은 영상을 돌려보며 그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반면, 데이브는 흥행을 염두에 두고 원곡을 변형시켜 대중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곡을 탄생시킨다. 그 모습에서 그레타는 실망감과 괴리감을 느끼는데, 아마도 그 노래 안에 담긴 자신의 감성과 진심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데이브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레타는 데이브가 바뀐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노래의 외향적인 모습을 바꾼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일까.

 

음악은 참 큰 힘을 가졌다. 사람들을 움직이고, 그들의 추억을 움직이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이번 주말에는 비긴 어게인을 보며 본인의 진주조개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와 같이 지난 추억에 잠기면서.

 

참 오랜만이죠 
모든 게 어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Ra. D 오랜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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