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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계모가 신데렐라에게



너를 마지막으로 본지도 어느덧 3년이 흘러간다. 나도 늙어가고 있어서 그런가, 요즘 따라 네 생각이 많이 나더구나. 길에서 아이들을 보면 특히 그래. 가끔가다 키가 내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어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내 인생에도 저런 행복이 있었지, 어렴풋이 회상한다. 네 언니들에게도 한때 넘어지면 안아달라고 팔 뻗을 온화한 엄마가 있었단다. 네 큰언니가 치킨 너겟과 햄버거 사이에서 큰 고민에 빠져있을 때, 당신이 치킨 너겟을 주문할 테니 딸아이에게는 햄버거를 주문하겠느냐고 물으며 웃어주던 아빠도 있었지. 이제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을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 아이들 아빠와 나도 예전엔 그런 사람들이었단다. 신데렐라 너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이 험난한 잿빛의 현실 속에서 무지갯빛을 볼 수 있도록 항상 창문을 예쁘게 닦아놓던 사람들이었어. 그 창문을 결국은 내가 깨버렸지만 말이야.


사실은 죽기 전에 너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본다. 나도 이제는 내가 너와 너희 아버지한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 또다시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내가 기적적으로 천사가 될 것 같지는 않거든. 그래도 조금이나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내 이야기를 적어보려 해. 이 편지를 읽고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괜찮아. 나도 알거든, 내가 용서받지 못 할 짓을 참 많이도 했다는 걸.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부디 네가 울지만은 않았으면 좋겠구나.



[1]



내 이야기는 아마 네 큰언니를 낳고 남편과 사별했을 때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거야. 너도 너희 어머니를 떠나보냈으니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겠지. 처음에는 절망했고, 그다음에는 신을 원망했다. 왜 벌써 우리 남편을 데려가셨어야 했냐고. 어린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신 거냐고. 순식간에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내 마음속에, 그 전의 밝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럽던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 어린 여자아이 둘을 홀로 지켜내야 하는 강한 어미여야 했으니까. 이웃들이 내 아이들에게 보내는 동정의 눈길, 그게 제일 참을 수 없었어. 경제적인 부족함은 노동으로 때울 수 있어도, 감정에 구멍이 생기고 상처가 나는 건 그보다 더 큰 감정으로밖에 메꿔질 수 없는 법이거든.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우연히 내 가게에 들어온 너희 아버지를 만났어. 나와 똑같은 눈을 갖고 있더군. 지켜야 할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담으려 하지 않는 탁한 눈. 장님보다 더 깜깜하게 멀어버린 그런 눈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희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해. 그 양반이나 나나 우린 둘 다 자기 자식들만을 위한 재혼을 했어. 난 너희 아버지가 내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길 원했고, 너희 아버지는 내가 너를 보듬어줄 수 있기를 원했을 거야.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그때부터 잘못된 거야. 우리 욕심에 너희들을 지키기는커녕 부서뜨리고 말 거라는 것, 그걸 우리 욕심에 눈이 멀어 너무 늦게 깨닫고야 말았구나.



[2]



어느 순간 나를 보니, 딸을 둘씩이나 두고도 내 딸들만 아낄 줄 알지 신데렐라 너한테는 모질게 구박만 하고 괴롭히는 악마가 되어 있더라. 네가 나의 이기심에 대한 피해자임은 명백하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만 그보다 오래전,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피해자였던 적도 있었단다. 내 아이들을 불쌍하게 쳐다보던 이웃들, 학교에서 아이들을 혼내며 ‘아비가 없어서’라는 말을 던진 교사들, 근사한 장난감 사줄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네 언니들을 따돌리던 동네 아이들. 그렇게 나는 우리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조성한 환경의 피해자였다. 결국 너를 구박하고 괴롭힌 건 내 결정을 마지막으로 거친 결과이지만, 그런 결정을 만드는 데까지 나를 끌어간 건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니었어. 그리고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단다. 심지어 자신의 결정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도 그래. 완벽히 독립적이고 자의적일 수 없는 나약한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결정을 해. 그래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순수하게 착할 수도, 순수하게 악할 수도 없어. 어린 너의 눈에는 세상이 흑과 백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잿빛으로 보이겠지. 그렇지만, 사실은, 각자가 자기만의 색깔이 물들어있는 사연을 하나씩 등 뒤에 숨긴 채 그 흑백 사진 속에 튀지 않고 어울리려고 노력하는거야. 세상이 원래 선과 악으로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모두가 선과 악 그 둘 사이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최선의 균형을 찾으려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야.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참 의미 없는 게, 세상은 너무 착하게 살 필요도 없을뿐더러, 어느 하나가 악역을 떠맡기에는 사연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단다.


살아보니까, 인생의 많은 선택이 사실 옳고 그름의 갈림길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치 하나라도 더 지키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더구나. 선만 고집하는 것도, 악만 고집하는 것도 그 가치에서 벗어나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되더라고. 나도 지키고 싶은 내 가족이 있으니까, 당연히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했어. 내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너한테서는 무언가를 빼앗아야 했지만 말이야. 양심의 가책 또한 느꼈지만 결국은 그조차도 무뎌지더구나. 내가 아무리 너를 똑같이 아끼려 노력한다 해도, 처음부터 부모의 욕심이 인위적으로 꾸린 가정에서 진심 어린 사랑을 기대하기란 오만이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내 자식들에게, 비록 이름뿐일지라도, 든든한 아버지가 생겨서 좋았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내 욕심 가득한 눈에는 너보다 내 자식들이 더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이 네 언니들에게 보내던 그 연민의 눈빛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그렇게 감정에 휩쓸려서 나는 그 이후로도 줄곧 이기적인 선택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그 선택만은 바꿀 리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3]



앞으로도 네가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슴에 품고 산단다. 그 말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네가 이해하지 못할 많은 행동 뒤에 사실은 네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열쇠가 숨어있다는 뜻이기도 해. 이해는 해도 용서는 안 될 일도 있을 것이고, 이해를 못 해도 용서할 수 있을 만한 일도 있을 거야. 다만, 내가 깨트리고 말았던 그 깨끗한 창문을 너는 잘 가꾸고 지켜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창문으로 보이는 잿빛 세상 속에서 부디 무지개를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너무 늦게 발견한 그 무지개를.

미안하다, 아가야.





사진 출처:

[1] https://www.google.com/url?sa=i&rct=j&q=&esrc=s&source=images&cd=&cad=rja&uact=8&ved=0ahUKEwirnvzx6fnPAhVqzVQKHZagAaMQjRwIBw&url=https%3A%2F%2Fwww.pinterest.com%2Falice1725%2Fcinderella%2F&bvm=bv.136811127,d.cGw&psig=AFQjCNE9QueBwgLNINqLKSOS-Y7gzs-CEg&ust=1477617932195155

[2] https://www.horsejournals.com/2013-photo-contest-winners

[3] https://willowwomanherbal.com/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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