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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정보 :: Information

내가 사랑한 산티아고

2015년 1월부터 2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던 그 시기에는 왜 이 길이 이리도 좋은지 스스로 답하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고, 그 길 위에서 몇 발자국 아니 어쩌면 수십 발자국쯤 떨어져 보니 그 이유를 찾기가 보다 수월하다. 이건 내가 찾은 그 이유들이다.

내가 사랑한 산티아고

2015년 1월부터 2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by쓴달Apr 06. 20192015년 1월부터 2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던 그 시기에는 왜 이 길이 이리도 좋은지 스스로 답하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고, 그 길 위에서 몇 발자국 아니 어쩌면 수십 발자국쯤 떨어져 보니 그 이유를 찾기가 보다 수월하다. 이건 내가 찾은 그 이유들이다.

   


 나만의 취향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것은 늘 애매한 일이다. 예컨대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다면 김치찌개와 탕수육 중에 열심히 고민해봐도 결국 어떤 것도 고르지 못할 것 같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러브 액츄얼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이며, 좋아하는 시에 대해선 많은 고민 끝에 김경주 시인의 [비정성시]라 조심스레 답하면서도 이 답변이 최선인가 싶은 의문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녀봤던 여행지 중에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아, 이건 유일하게 한 치의 고민도 필요 없이 입 밖으로 바로 내뱉을 수 있다. 스페인,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스페인이 최고다.


    남들보다 특별히 많은 나라를 다녀봤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스페인으로 떠나는 그 해까지 세계의 적지 않은 곳들을 구석구석 다녔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호주부터 일본, 몇몇 유럽국가와 홍콩, 그리고 인도까지. 어릴 적 엄마가 떼 왔던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끼어 있던 탓이었을까. 성인이 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떠나고 싶은 충동에 늘 속이 울렁거리곤 했다. 글쎄, 어쩌면 어떤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저 멀리서 둥둥거리는 북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서, 소리가 들리는 그 장소가 궁금해서 몇 밤을 뒤척이다가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짐을 꾸리게 되는 것이 역마살이 낀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도.

                                 


    스페인으로부터 들렸던 그 특유의 북소리와 마주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발단은 몇 해 전 우연히 티브이에서 보았던 걸어서 세계를 일주한다는 내용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스페인의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총 800km 남짓한 길을 오직 ‘걸어서’ 가로지르는 여행을 다뤘었고, 끝도 없이 펼쳐 진 광활한 평야를 가방 하나 달랑 짊어지고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뻗은 채 어제 남은 치킨이나 으적거리면서 티브이를 보는 골방 청춘의 가슴을 향해 총 한 발 쏘기에 충분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묵묵히 걷는 그들은 다들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고 있거나 혹은 깨달은 사람처럼 밝게 빛나 보였으니까.


    나중에서야 그 길이 성 야곱의 무덤이 발견된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향해 사람들이 순례를 떠나는 길이고,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당시 다니던 학교의 겨울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길을 걷기 위해 사 십일 동안의 여정을 금세 떠날 수 있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스페인이, 스페인의 전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가 스페인의 모든 구석구석을 다녀본 것은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출발지였던 프랑스의 생장에서부터 최종 도착지였던 스페인의 묵시아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지역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좀더 올바를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 중에서 가장 사랑하게 되었냐고?





#1, 낮은 구름, 광활한 들판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가 흔히 아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같은 스페인의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시골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냐, 영웅 엘시드의 고향인 부르고스, 그리고 유네스코 유산 중 하나인 레온 대성당이 있는 레온과 야곱의 무덤 위로 세워진 도시 산티아고. 이렇게 총 네 개의 대도시를 제외하면 사십여 일간 거쳐 가는 수십 개의 도시들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남부 유럽 작은 마을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 각 도시를 차례대로 잇는 길인 순례길 또한 대부분이 대도시처럼 정비되어 있지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같이 콘크리트 정글을 헤매던 이들에게 흙과 바위, 잡초로 가득 찬 길을 걷는 것은 대개는 즐거운 낯섦이었지만 때로는 왠지 모를 그리움으로 아득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길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행위가 낯설지만 문자 그대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로등이 있을 턱이 없는 길을 걸어 다음 마을까지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길에 나서야 한다. 마을을 거진 빠져나올 때가 되어서야 게으른 해는 느지막하게 기웃거리며 떠올랐다. 그제야 주변이 밝아지면서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용히 내뱉었다. 아, 정말 오길 잘했다고.   







    홍콩의 화려한 야경, 파리의 쓸쓸하고 고고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이렇게 지구의 한켠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어 버리곤 한다. 그렇게 좁아진 인식 때문일까, 때로 새로운 세상에 온 것처럼 별천지 같은 도시들이 선사하는 이국적인 느낌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더더욱 이국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스쳐 가는 양 떼들의 틈에서, 사람을 피하지 않는 들고양이의 곁에서, 또 오리와 소 떼 사이에서 그렇게 마주했던 이국적인 순간들은 순례길에서 얻어갈 수 있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분명 아름다운 자연이 산티아고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인위적인 상품의 가치를 담아 관리되어온 자연과 수백, 수천 년 동안 시간에 풍화되면서 방치되어온 자연, 그 날것의 모습 그 자체가 주는 떨림은 분명 다른 것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나라지만 순례길 대부분은 쭉 뻗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오히려 중간중간 만나는 언덕들이 반가워질 만큼 너른 평야를 걷는 것은 솔직히 때로는 졸릴 만큼 단조로운 것이기도 하다. 그때는 그저 고개를 위로 들어 이상하리만큼 낮게 내리깔린 이베리아의 구름을 바라봤다. 톡하고 뛰면 손에 닿을 듯한 뭉게구름들 틈 사이로 떨어지는 한 줄기 햇빛처럼 경이로운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금세 단조로움 따위는 저 구름 위로 날아가 버리곤 했다.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그런 경이감에 젖은 채로 선하고 따스한 남부 유럽의 바람에 안길때면, 좀 더 나아가 스스로 성스러워지는 기분까지 종종 들었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원죄가 씻겨지는 느낌이란다. 여하튼 지금 돌이켜보면 민망한 그 순간이 그 순간만큼은 그 길 위에 있던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던 시간이었음을 믿는다.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조차 잠시 멈추어 서서 손을 모으게끔 하는, 순례길의 자연경관은 다른 곳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어떤 힘으로 가득 차 있다.





#2. 아름다운 문화유산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나서 각 마을의 숙소에서 발급받았던 스탬프들을 제시하면 이 길을 완주했다는 증표인 산티아고 순례증서를 발급해준다. 만약 당신이 숙소뿐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몇몇 대학교에 들린다면 최종적으로 산티아고 대학의 명예 학위 또한 수여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사람들이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라는 믿음의 증표이다. 그만큼 순례길에서는 수많은 역사와 문화적인 유산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적어도 아스트로가의 가우디 주교 궁, 레온과 부르고스의 대성당, 영웅 엘시드의 자취, 용서의 언덕, 카스틸라 운하, 템플 기사단의 성지, 한 명의 기사가 백 명의 적과 싸웠다는 결투의 다리, 소원의 철 십자가, 세계 3대 선사유적 중 하나인 아타푸에르카, 그리고 스쳐 갔던 수많은 박물관. 이러한 만남은 순례길을 걷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


    

    특히 스페인은 천재 건축가인 가우디가 태어났고 살았던 땅인만큼, 순례길의 곳곳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그 웅장함에 홀려서 자신도 모르게 쩍하니 입을 벌리는 순간들은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의 작품 자체를 잘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과 도시 간의 균형미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가우디의 건축물에 맞추어 그 당시의 도시의 이미지를 최대한 지키고 있다. 그런 도시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19세기 말 무렵으로부터 정지된 시간을 노크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깨 한켠에 떨어진 시간의 부스러기들은 이 문화와 전혀 상관없는 동양인마저 지나간 시간의 향수에 잠기게끔 했고,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까지 주변을 서성이며 조용히 그 부스러기들을 되새기곤 했다.   



    무엇보다 순례길의 좋은 점은, 이러한 문화유산들을 만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경로를 바꾸는 등의 소요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는 길을 그저 걷기만 하다 보면 길에서 자연스레 유산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 순례길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걷다가 지쳐서 아무 마을에나 들어가서 짐을 풀고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모든 곳곳에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들이 조용히 숨을 내쉰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의 성당에 들러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답고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역사 깊은 장식물들을 통해서 나는 마치 주위에 항상 있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다. 하나의 여행지에서, 하나의 길 위에서 이토록 많은 유산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 세계에 또 있을까




#3. 저렴한 비용


    아무래도 학생의 신분이다 보니 비용이 여행을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임은 당연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고자 마음은 먹었지만, 곧 금전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달래며 단념했던 경험이 대부분 한 번쯤 있지 않을까. 게다가 유럽은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해외 여행 중에서도 가장 비싼 비용을 자랑한다. 과거 두 달 정도의 유럽 여행동안 대략 900만 원 정도가 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아무리 유럽이 좋고 그리워도 다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순례길의 장점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 여행 중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엔 사십 여일 동안, 왕복 비행기 표를 포함하여 총 300만 원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우선 도보 여행이다 보니 왕복 비행기 표를 제외한 부가적인 교통수단 비용은 당연히 일절 들지 않는다.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정부와 지자체들이 장려하는 국가적인 사업이기에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은 누구나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순례자들은 그들 여정의 대부분을 알베르게라고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묵게 되는데, 첫 출발지에서 발급받은 순례자 여권을 제시하면 이용할 수 있는 이 숙소는 배낭여행 중에 흔히 묵는 유스호스텔과 시설 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순례길 위에 있는 대다수 마을에 최소한 두세 개씩은 운영되고 있는 공립 숙소이다. 이층 침대와 각종 편의시설을 보유한 이 순례자 전용 숙소의 이용 요금은 평균적으로 하룻밤에 8유로 정도에 불과했다. 심지어 몇몇 곳은 정해진 요금 없이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되는 곳들도 있었으며 (물론 양심껏 냈다), 대부분 숙소에서는 Wifi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조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었다. 만약 일반 스페인 가정집 분위기의 사설 알베르게를 이용한다고 할지라도 하룻밤에 10유로 정도면 충분했다. 지난 유럽 여행에서 들었던 숙박비를 생각한다면,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 만큼 저렴한 비용이다.




    식비도 전혀 부담스러울 것이 없었다. 스페인의 물가가 생각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직접 재료를 사서 점심에 보까디요와 같은 스페인 전통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알베르게에서 직접 조리를 해 먹는다면 하루에 식비가 8유로를 넘지 않았다. 또, 여행하는 동안 그 나라의 식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여행자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해 먹는 일이 귀찮을 뿐인 나와 당신과 우리를 위해, 여기서 또 하나의 혜택이 있다. 순례길 위의 많은 식당에 있는 순례자 전용 메뉴가 바로 그것이다. 순례자들에게 그저 빛과 같은 이 메뉴를 주문하면 전채요리인 수프와 빵, 그 후에 스테이크와 같은 몇 가지 주요리 중 하나를 선택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그 지역의 특산 와인까지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 그런데도 가격은 겨우 8에서 10유로 정도. 저녁이면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과 나가서 종종 먹었던 이 메뉴는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채워주기에 충분했고, 부담 없는 와인 한 잔은 오늘의 지친 다리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런 숙식비용뿐 아니라, 입장료가 필요한 박물관이나 유적지 같은 경우에도 순례자의 경우에는 무료이거나 절반 이상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km에 1유로면 충분하다는 말은 순례길에서 유명한 격언이다. 즉 40여 일 동안 800km의 순례길을 걷는데 필요한 비용은 800유로, 9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엔 대부분 점심과 저녁을 식당에서 해결했었고, 매일같이 카페나 바에 들리며 순례자로서는 꽤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하루에 30유로 이상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걷기만 하는 나날 중에 특별히 돈을 써야 할 일도, 써야 하는 순간도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밤이면 다음 날 사용할 예산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또 할인권을 찾아 인터넷에서 밤을 지새우던 다른 여행들과는 달리, 예산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달랑 순례자 여권 하나만 들고 그저 순례길을 즐기기만 해도 충분한 날들이었다. 이런 감사한 날들이 순례자들의 비용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나서서 독려한 결과인걸 생각해보라. 아, 이 얼마나 매력적인 나라인가.



#4.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800km에 달하는 긴 거리를 단지 두 발로 횡단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난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하던 행군보다 힘들겠나 싶어서 나섰던 길이었는데, 행군보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할지라도, 매일 보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연인과의 권태기에 들어선 사람처럼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순례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들끓는 순간도 올지 모른다. 그래서 함께 순례길을 걷다가 중간에 돌아가거나 버스를 이용해서 도착지로 먼저 가버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삶의 권태를 피해서 찾아온 순례길에서 권태를 느끼는 되는 역설이 우습지만 그 당시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공황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떠나자니 아쉬움이 남았고, 계속 걷자니 지겨움이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들어 주었던 것이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하루에 걷는 거리는 얼추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날에 순례길에 들어선 사람들과는 보통 마지막 날까지 함께하기 마련이다. 바로 옆 침대에서 잠들기도 하고, 같은 식당에 있기도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트는 민망하고 낯간지러운 순간이 지나가자 금세 전우애와 같은 어떤 애정이 싹트게 되었다. 마치 고작 한 달 여의 훈련소에서 몇 년 된 친구처럼 친해졌던 동기들처럼 같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밥을 같이 만들어 먹고,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기도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평소에 심하게 낯을 가리는 나 같은 사람도 순례길에 오지 않았더라면 만날일이 없는, 어떤 접점도 없는 사람들과 금세 마음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던 것은 어떤 ‘힘’이 그때 그곳에 있던 우리에게 작용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공주에서 올라온 간호사 누나, 대학원에서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 형, 부산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세계 일주 중인 동생, 환갑이 되어가는 변호사 삼촌까지. 순례길을 걷지 않았다면 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내 세계는 분명 지금보다 조금 더 작았겠지.


    다른 여행지에서 흔히 일어나는,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그 장소까지 동행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경험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서로의 발 상태를 확인해주고, 체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페이스를 맞추며 걷고, 누군가가 힘겨워 보이면 짐을 옮겨 담아 대신 메고 걷는것과 같은, 그러한 모든 행동은 단지 만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동행이기 보다는 몇 년간 함께 해온 가족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 여정 동안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한 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순례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냈다. 그때처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순례길을 걸으며 있었던 사건 사고들은 만날 때마다 풀어 놓아도 늘 새로운, 절대 떨어지지 않을 단골 주제다. 지금 이렇게 순례길이 그리운 것은 전적으로 그들 덕분일 것이다. 여러분 이기적인 나와 함께 걸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비단 함께 순례길을 걸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순례길에서 스쳐 갔던 모든 사람들 또한 감사하다. 비가 쏟아지던 날, 홀딱 젖은 채로 저무는 해를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걷는 나를 시트가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워준 안경 쓴 스페인 아저씨. 서로 안되는 영어로 간신히 소통하면서 길을 잃어버린 나를 알베르게까지 데려다주었고, 알베르게의 문이 닫혀있자 자신의 집에서 재워줬던 스페인 대학생 친구. 그리고 또 강도를 당할 뻔했는데 자신의 가게에 들여 보내주고 지켜준 아저씨도 고맙고, 자신의 요리를 파울로 코엘료도 먹고 갔다며 자랑스러워하던 알베르게 자원봉사자 형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어서 조금은 감사하다. 아!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신문에 실어준 스페인 기자분들께도 감사하다. 눈으로 덮인 피레네를 넘느라 헐떡거리던 우리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덕분에 잊지못할 추억이 하나 생겨서 이렇게 또 한 번 여기에 자랑을 하는 중이다.  








#.



    내가 가장 사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나니, 아껴 놓은 보물을 꺼내놓은 것처럼 괜히 아쉬움 반, 이 보물을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싶어 두근거림 반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누군가 내가 소개한 순례길을 읽고 나서 순례길을 떠나게 될까, 이 글이 누군가의 귓가에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될 수 있을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혹시 모르니 보험을 들어놓자면), 이렇게 써 놓아서 약간 있어 보일지도 모르는 나의 순례길 여정은 솔직히 별 것 없었다. 누군가는 순례길을 내면과 마주하는 명상의 길로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하루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걸었을 뿐이었다. 귀국 후에는 가기 전과 똑같이 하루에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삶으로 돌아갔다. 다녀와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순례길에서 온갖 명상을 하고, 내면을 갈고 닦아서 돌아와 지금까지의 삶과는 180도 다른 새로운 삶을 산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내 여행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쓰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고, 사실 그곳도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감동적이지만도 않았으니까. 도피처라고 하기엔 고생이 심했고, 모험이라고 하기엔 단조로운, 그런 곳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례길을 사랑한다. 적어도 그 길 위에서 나는 완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하루하루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고, 벽을 마주하고 수도 없이 가열차게 탁구공을 쳐내던 어떤 영화의 주인공처럼 멈추지 않고 밀려오는 일들에 덮여 매몰되어가던 하루에서 몇 발자국쯤 벗어났다. 매일 걸었지만, 매일 걷는 길은 달랐다. 매일 다른 것들을 보았고,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으며, 다른 곳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걷다가 지치면 멈췄고, 아름다운 곳이면 멈췄고, 아무 생각이나 들면 멈췄고, 그냥 멈추고 싶으면 멈췄다. 그러다가 걷고 싶으면 다시 걸었다. 외롭고 싶을 때는 혼자 걸었고, 외로움이 진저리 날 때는 함께 걸었다. 그렇게 나는 그 길 위에서 그동안 매일 허겁지겁 삼켜내던 반복된 일상들을 게워냈다. 벽을 등지고 손에 쥔 라켓을 내려놓자, 그제서야 오롯이 내 것이 된 시간은 비록 토사물 덩어리였지만 그래도 그것은 온전히, 그리고 유일한 나만의 것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처럼 그곳에서는 나도 시간 위로 유화처럼 짙은 하루하루를 꾸덕꾸덕하게 덧칠해가며 꼭 움켜쥐고 지냈다. 나에겐 순례길이 그렇게 온전히 나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였다. 지금, 이 순간까지.


    앞서도 말했지만, 뭐 그렇게 지냈다고 해서 삶이 변화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여행지에서 깨달은 작은 철학이라도 던져 놓기엔 내 삶이 너무 온전히 그대로라서 창피하다. 그냥 그 순간이 좋았을 뿐이었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순례길로 떠나서 그 순간들을 만끽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 아니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음,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직접 한 번쯤 이 길을 걸어보라. 당신은 나와 다른 사람이고, 나와는 분명 다른 경험을 하게 될 테고, 다른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달리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 당신 또한 이 길을 나처럼 사랑하게 될 것은 분명히 장담할 수 있다. 무의미한 시간으로 치부해버려도 여전히 그 길이 빛나도록 그리운 나처럼. 설사 무의미한 시간이 되더라도 뭐 어떤가, 그 길 위에서 만큼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 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할텐데.










* 이 칼럼의 제목은 대한항공의 광고 '내가 사랑한 유럽'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 출처, [1] : http://gumption.tistory.com/entry/20-Day-2014%EB%85%84-3%EC%9B%94-21%EC%9D%BC-%EB%A0%88%EC%98%A8-%EC%95%84%EC%8A%A4%ED%86%A0%EB%A5%B4%EA%B0%80-J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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