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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3

스무 살 최정윤 [cover] [1] 1.열아홉의 나는 달을 사랑했다. 쳇바퀴 돌 듯 굴러가는 반복적인 일상의 흐름 속에 지친 채, 불 꺼진 깜깜한 방을 더듬어 찾아간 침대에 몸을 뉘고 나면 밤하늘이 내게 쏟아졌다. 제주의 밤하늘이었다. 어두운 듯 태양의 빛을 살짝 머금고 있는 검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발자국, 그리고 외로운 달을 바라보는 것은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달빛이 나를 감싸 쉬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다음 날 하늘에 달이 없으면 묘연한 그 행방을 고민하다 잠이 들곤 하는. 나는 달에 많은 것을 말하고 많은 것을 보였다. 2.참, 돌이켜보면 그랬다. 열아홉의 나는 나의 밤하늘을 살짝 들췄을 때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핑크빛 구름, 따사로운 바람, 무지갯빛 오로라 따위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 2017. 12. 2.
오리온자리, 진솔함, 그리고 너 [1] 내 친구는 완벽하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잘 맞는다. -알렉산더 포프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늘을 자주 보는 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공감할 거리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필자에게 파란 하늘은 그저 눈앞에 있는 더 중요한 것들을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배경일 뿐이며, 칙칙하게 구름덮인 하늘은 그날따라 운이 없음을 무의미하게 탓해볼 분풀이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하늘이 낮의 하늘이 아니라 새카만 밤하늘이라면 나는 갸우뚱하던 고개를 들고 격하게 동의할 수 있겠다. 내게 밤하늘은 안락한 꿈속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꿈밖의 현실로 옮겨다 놓은 듯, 내면의 이상을 영원히 끊나지 않을 영화처럼 하늘이.. 2016. 3. 14.
순수함, 그리고 겨울에 관해 Seiman C, Flickr 1월, 어느새 해가 진 삼성동의 빌딩 숲 속 어딘가, 십 년간의 외국 생활과 이러저러한 이유 탓에 한국의 겨울을 볼 일이 없었던 나는 열두 살 무렵 마지막으로 본 진눈깨비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 밤하늘 색과 비슷한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비스듬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지하철역 상가에서 천원 몇 장을 건네고 사서 낀 검은 털 장갑이 생각보다 두터워 라이터를 켜기가 어려웠고, 오른쪽 장갑을 벗어 시린 손과 담배를 코트로 가린 채 다시 한 번, 두 번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렸다. 어느새 불붙은 담배는 어두운 거리에서 홀로 붉게 빛났고, 몰려오던 피곤함에 벽에 기대선 나는 담배 연기 너머로 지나가던 이름 모를 여인들과 몇 초간 눈을 마주친다던지 하.. 2016.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