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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오리온자리, 진솔함, 그리고 너

[1]


내 친구는 완벽하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잘 맞는다.

                                      -알렉산더 포프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늘을 자주 보는 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공감할 거리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필자에게 파란 하늘은 그저 눈앞에 있는 더 중요한 것들을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배경일 뿐이며, 칙칙하게 구름덮인 하늘은 그날따라 운이 없음을 무의미하게 탓해볼 분풀이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하늘이 낮의 하늘이 아니라 새카만 밤하늘이라면 나는 갸우뚱하던 고개를 들고 격하게 동의할 수 있겠다. 내게 밤하늘은 안락한 꿈속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꿈밖의 현실로 옮겨다 놓은 듯, 내면의 이상을 영원히 끊나지 않을 영화처럼 하늘이라는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투영상과도 같으니 말이다.

밤하늘이 필자에게 선물하는 그 안락한 느낌을 누구나,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고요하건 시끄럽건, 어둡던 밝던, 제정신이건 아니건, 온종일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걱정 고민들이 모두 세상 저 뒷편으로 밀려난 듯하고, 곧 똑같은 일과를 시작해야 할 새로운 하루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겠지만 왠지 모르게 내일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미적지근한 공허함 말이다. 별거없지만 이상하게 적막하지만은 않은 공허함. 열정으로 가득 차있지도 않지만 차갑지만도 않은 공허함. 오묘하게 미소 짓게 하는 그런 공허함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다른 순간들로 찾아오나, 그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뿐이다. 필자도 최근에 들어서야 새삼스레 그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깨달았고, 아주 소중한 순간이기에 또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이렇게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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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자리가 떠있는 밤하늘 아래 불완전한 침묵 속에서 친구와 나누는 진솔한 딱 한마디. 나의 행복한 공허함은 그렇게 친구라는 존재를 통해 찾아왔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하루였다. 캠퍼스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있고, 용돈에 의존하는 가난한 대학생이며, 늘어가는 학업량을 바삐 쫓아가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에 대한 고민거리,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 등 모두가 달고 사는 짐도 함께 짊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인사와 수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간식 택배, 맛있는 저녁 밥상과 달콤한 디저트를 비롯한 사소한 행복들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가 끝나가던 깊은 밤, 일찍이 비가 와서 축축해진 시멘트 담 위에 앉아 나는 남쪽 하늘을 두리번거리며 오리온자리를 찾았고, 유독 오리온자리에 집착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기꺼이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올려다봐주는 친구와 단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나는 밤공기에 차가워진 손으로 친구 머리 위에 앉은 이슬 방울들을 조심스레 털어주었고, 친구도 똑같이 바보웃음을 짓고는 뒤뚱대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솔직한 거 제일 좋아하는 네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인데, 왜 너는 너 자신한테 거짓말해?”


[3]


아무 말 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를 빤히 바라만 보고 있는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친구는 덧붙였다. 다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하는 것이 다 보인다고. 남들은 그저 너의 삶이 순탄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너를 아끼는 나는 너 자신이 너의 감정을 열심히 짓밟으며 감정선에 조금의 언덕도 허용치 않으려 애쓰는 것이 다 보인다고. 다 알지만 자칫 주제넘게 충고했다가 혹여 네게 미처 내가 헤아리지 못한 상처를 주게 될까봐 지금까지 먼저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고.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혼자 둘 수 없어서, 너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중에도 끊임없이 내 눈을 마주하다가 결국 일그러지며 눈물이 가득 맺힌 친구의 맑은 눈동자는 단연 동정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었으며 비관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이해와 확신으로 자리잡은 우정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친구의 질문이 아니었다그 친구 또한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것과 동일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고 보듬어 주려 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그날 밤 느낀 행복한 공허함의 큰 부분은 곧 이 친구가 보여준 것과 같은, 꾸밈없이 진실한 우정이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심리학 이론 중에 아는 자는 모르는 자가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식의 저주라는 이론이 있다. 이는 지식뿐만 아니라 감정에 대해서도 성립하며, 느낀 자는 느끼지 못한 자가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감정의 저주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명제가 된다. 그런데 내게 그리도 솔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달라 부탁한 친구는 이 모든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진짜 친구란, 당신이 힘들 때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도 아니며 당신을 웃게 하는 유머러스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친구는 당신이 울 때 어깨를 빌려주거나 휴지를 건네지만, 진짜 친구는 당신이 울음을 참고 있을 때에도 당신보다 서럽게 운다. 그냥 친구는 당신이 웃으면 따라 웃지만, 진짜 친구는 같은 것에 웃지 않아도 행복함을 표현하는 방법만은 당신의 바보같은 웃음까지 함께 닮아간다.


[4]


진짜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에 대한 생각은 살면서 계속 다듬어지겠지만, 이것이 10대의 우정보다는 성숙한 20대의 우정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의 친한 친구는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친구였다. 처음 공기놀이를 배우다가 공깃돌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함께 쓰러져 웃고, 선생님 몰래 쪽지를 돌리고 지우개를 던져가며 짖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으며, 봄이 되면 지난 가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같이 실개천에 풀어주었던 어미 물고기가 낳은 새끼 물고기들을 보기 위해 점심 급식도 안 먹고 뛰어나가곤 했다. 휴대폰이 없어도 이상하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함께했다. 사소한 것 때문에 티격태격해도 그저 어디로 함께 간다는 것과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에서 추억을 쌓고, 그렇게 쌓은 추억이 떼어낼 수 없는 익숙함이 되어 지금의 10년 지기 소꿉친구가 되었다.

이제는 어렸을 적의 천진난만함과 야단법석 대신 각박한 세상에 첫 발을 내딛으며 철이 들고 각자의 맡은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차분함이 밴 청춘의 열정이 있다. 쉴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이제는 매일매일을 함께하지 않아도,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꼭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맥주 한 캔을 나눠마시는 것만으로도 평온한 행복감에 취하며, 그럼에도 서로의 생일은 내 생일보다 성대하고 의미 있게 보내도록 해주려 온갖 난리를 쳐가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약속 시간에 늦어도 늦어서 미안해라는 무뎌진 말보다 기다려줘서 고마워라는 진심 어린 말이 더 좋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투다가도 결국 부둥켜안고 서로의 어깨를 눈물로 흠뻑 적시며 코맹맹이 소리로 사과하고 화해한다.


[5]


30, 40대의 우정은 또 다를 것이다. 그 때는 오리온자리 대신 큰곰자리를 가리키며 웃고 있을 수도 있고, 맥주 한 캔 대신 막걸리 한 병을 들이키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치여 다니다가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에 보게 될 수도 있고, 단순히 행복한 공허함을 나누는 친구가 아니라 공허한 행복감을 꽉 채워주는 친구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든지 간에 그 또한 나 자신보다도 친구를 먼저 생각해주는 그런 우정일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일 것이라는 현재 나의 확신에는 변함이 없지 않을까 싶다. 알렉산더 포프의 말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나는 우정이라는 완벽한 충만함을 맛보게 해준 나의 소중한 친구와 그런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를 선물해준 저 밤하늘의 행복을 늘 동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친구와 함께 올려다보는 밤하늘을 아는 이는 그 따스한 기억을 가슴 깊이 품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 출처:

[1] dasforyou.tistory.com 

[2www.sac-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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