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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3

짖궂은 농담, 성숙한 웃음 인생은 어떤 심오한 계획도 감추고 있지 않고 어떤 믿음직한 약속도 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우리에게 그저 섬뜩하거나 짖궂은 농담을 던질 뿐이다. 인생은 농담을 던지고, 인간은 웃음으로 응수한다. 순수하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그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자가 성숙한 자이다. (김영하) 中 시원한 바람 사이로 햇살이 따스하게 피부에 내려앉는 오후였다. 나는 숨길 수 없는 관광객 티를 있는 대로 내며 오른손에는 카메라를, 왼손에는 스페인어가 빽빽한 지도를 들고 오백 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길을 걸었다. 바닥에는 무채색의 모난 돌들만이 끝도 없이 깔려있었지만, 양옆으로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붉은색, 노란색, 아이보리색 단층집들이 새파란 하늘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잔혹했던 스페인 식민시대에 세워졌다고는 믿을.. 2016. 2. 13.
도쿄, 나를 잃는다는 것 비 내리던 수년 전 서울시내의 한 작은 커피숍 안,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발밑 빗물 젖은 우산을 해진 운동화 끄트머리로 툭툭 치며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과거의 친구 녀석은 노래가 좋으니 들어보라며 자신의 귀에 꽂고 있던 하얀색 이어폰 한 짝을 내게 건넸다. 고요한 분위기의, 구절엔가 아른함이 녹아있던 빌 에반스의 한 재즈곡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주위에 괜히 머쓱해진 나는 무엇 하러 이런 지루한 음악을 듣느냐 짓궂게 물었다. 그때 상대방이 말해주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재즈 카페에서는 지난 오십 년간 매일 아침, 항상 첫 번째로 이 곡을 틀었었다고. 그 작은 사실도, 노랫소리도 참 멋스럽지 않느냐고. 친구는 반세기 동안이나 매일 같은 곡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전통이.. 2015. 11. 3.
모태신앙: 허구의 집합체 모태신앙이 뭔가요? 기독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한국에서 살았다면, 주변에서 교회를 접했다면, 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누구나 한번 쯤은 접해보았을 말이다. 은근히 교회에서 강조되는 말이기에 우리는 이 모태신앙이라는 단어는 - 때때로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 예수쟁이들의 자기합리화, 또는 망상으로 생각하고는 하지만,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과 주변에는 자신이 모태신앙임을 밝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기 전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은 모태신앙이라는 개념은 외국에서는 비교적 잘 나타나지 않는 한국의 특수한 개념이며, 한국 내에서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예: 불교) 에서도 쓰인다는 점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모태신앙의 개념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 2011.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