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8 도쿄, 나를 잃는다는 것 비 내리던 수년 전 서울시내의 한 작은 커피숍 안,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발밑 빗물 젖은 우산을 해진 운동화 끄트머리로 툭툭 치며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과거의 친구 녀석은 노래가 좋으니 들어보라며 자신의 귀에 꽂고 있던 하얀색 이어폰 한 짝을 내게 건넸다. 고요한 분위기의, 구절엔가 아른함이 녹아있던 빌 에반스의 한 재즈곡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주위에 괜히 머쓱해진 나는 무엇 하러 이런 지루한 음악을 듣느냐 짓궂게 물었다. 그때 상대방이 말해주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재즈 카페에서는 지난 오십 년간 매일 아침, 항상 첫 번째로 이 곡을 틀었었다고. 그 작은 사실도, 노랫소리도 참 멋스럽지 않느냐고. 친구는 반세기 동안이나 매일 같은 곡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전통이.. 2015. 11. 3. 사십 년 후, 서울 팔월 하루 아침, 여름 창공 아래 귀가 찢어져라 울어대던 매미소리를 벗 삼아 나는 색채 없는 육층 아파트 비상계단 입구에 우두커니 서 차가운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십분. 이십 분. 갑갑한 더위 속이었지만 콘크리트 그늘 아래 여름 향내가 아무래도 좋아 그새 미적지근해진 커피를 연신 홀짝대며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등굣길 한 남고생, 여고생이 저만치 가로수들 사이로 손을 잡은 채 걸어가고 있었고, 시야 속 바삐 날갯짓을 하던 녹색 잠자리를 따라 시선을 치켜세우니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여객기가 작열하는 태양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아침을 만들고 계셨다. 좁은 아파트 부엌, 이리저리 움직이시던 아버지 사이로 들어간 나는 젓가락이나 그릇 같은 것을 .. 2015. 10. 2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