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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공중목욕탕

그림 출처: http://yakdol.tistory.com/120


어릴 적 아빠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던 공중목욕탕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거대한 배불뚝이 아저씨, 삐쩍 골은 아저씨, 옆집 형, 문구점 아저씨, 한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 추운 겨울날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탕 속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모락모락 나오는 김을 보면 빨리 탕 속에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또 너무 뜨거우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고. 결국 발만 먼저 담가보고 몸에 온기가 돌면 서서히 따뜻한 탕 속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열기가 너무 뜨거워지면 얼른 나와서 냉탕에 풍덩 들어갔다. 몸이 찌릿찌릿. 개구리헤엄으로 여기부터 저기까지. 수영장 같다. 물이 튀는 게 거슬렸는지 열탕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한마디 하면 왠지 머쓱해지고 서럽기까지 했는데. 그럼 아빠가 와 같이 사우나에 들어가자고 한다. 사방에 까만 나무가 박혀있는 이상한 방. 몸에 좋은 참숯이라고. 수증기 같은 것이 나니깐 왠지 열대 우림에 온 것 같기도 해. 코로 들이마시면 그래도 바짝 마르던 목이 좀 견딜만한 느낌이다. 모래시계에 모래가 다 내려가면 나간다고 하시는 아빠. 나도 같이 참을래. 아빠랑 같이 눈을 감고 흐르는 땀을 팔로 훔치면서 견뎌보지만 너무 더워서 결국 나 먼저 나와서 샤워를 한다. 아빠가 나왔다. 이제 비누칠 하고 씻고 나가야 한다. 우리 아빠 등은 항상 내가 비누칠 한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 하고 불평을 하기도 했었지. 그래도 다 하고 나면 왠지 나도 뭔가 한 것 같은 뿌듯함이란. 그리고 공중목욕탕을 나오고 나면 왠지 노곤노곤해서 잠이 들곤 했다.

그 때가 그립다. 마치 무슨 의식처럼 순서를 지켰고, 가끔은 그 순서를 깨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헤엄치던 그 때. 영원히 어린 아이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20대 청년이 되어 타국에 와있다. 미국에 있는 좁은 샤워 부쓰는 불편파기도 하고 탕 속에 몸을 담가 피로를 풀고 싶은데 계속 서있다 보니 다리가 더 저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가면 항상 공중목욕탕을 간다. 아빠가 있을 때는 꼭 아빠와 함께. 조금 큰 후에 찾아간 공중목욕탕은 더 좁아졌고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공중 탕 이용은 비위생적이고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자신의 알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인듯하다. 하지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대머리 아저씨와 틀니를 씻는 늙은이. 저 사람은 무슨 대기업 사장일까? 저 아저씨는 길거리의 노숙자인데 한 달에 한 번 하는 목욕을 오늘 하는 걸까? 모르겠다. 여기서는 그냥 다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 인간일 뿐이니까. 훈장도 없고, 주홍글씨도 없다. 대기업 사장도, 거리의 노숙자도 다들 그냥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탕은 항상 정직해서 물에 비친 내 얼굴에 주름들을, 쳐지는 내 몸을 보여주니까.

어릴 때는 정말 넓고 어떤 것도 막을 것만 같았던 우리 아빠 등이 작아 보인다. 내가 커버린 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빠가 작아진 걸까. 아니, 둘 다인가 보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울타리에서 항상 흡족하게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나는 이렇게 커버렸고, 한 가정을 책임지던 아빠의 어깨는 이렇게 쳐져 버렸다. 맛있는 거 있을 때마다 내가 다 먹어서 그런가 보다. 아빠 일 하고 계실 때 열심히 놀고 자서 그런가 보다. 그냥 잘 커 주는게 선물이라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서 그런가 보다. “아빠 어깨 무거워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너무 당연해서 왠지 그 말을 꺼내는 내 입이 부끄럽고, 콧등이 시큰거리고 말 하는 순간 목이 메일 까봐 못 하겠다. 왠지 낯간지러워. 새삼스러워. 이제는 직업병 때문에 등이 계속 굽고 팔이 굳어서 뒤로 돌리는 것도 잘 안 되는 우리 아빠. 괜찮냐고 물어보면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우리아빠가 가끔 무섭다. 어릴 적 무등을 태워주시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파킨슨 병으로 걷지도 못하게 되신 것처럼 그렇게 될 까봐. 항상 괜찮다고 이까짓 거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씀하셨다던 친할아버지가 후두암으로 그렇게 가신 것처럼 그렇게 참기만 할 까봐. 끝까지 우리만 챙기고 자기 자신은 안 돌보시니까 그런 아빠가 무섭다.

하지만 "아빠 어깨에 진 짐 너무 무거우면 나눠서 들어요" 라고 말 하지도 못 한다. 항상 옆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게 내가 하는 전부인 무능력한 나에게 화가 나지만 또 너무나 오랜 시간 보호 아래 있었기에 난 여전히 이기적이다. 아빠 힘들 때 차 운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대신 해 드릴 수도 없다. 지금은 타국에 나와서 아빠 돈으로 사치를 누리고 있다. 그냥 이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무력해 진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이렇게 있으면 나중에 너무 너무 후회할 것 같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빠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도 왠지 자라면서 빈도수가 줄어들어버렸다. 괜히 화를 내는 일만 늘어버린 나. 굳어버린 아빠 어깨가 괜히 싫어서 헬스클럽이라도 끊고 운동하고 마사지도 받아서 풀라고 다그치지만 결국 나때문인걸 안다. 아빠가 일해서 내가 미국에서 공부 할 수 있는거니까. 결국 화는 미안함으로 바뀌고, 다시 부끄러움으로 바뀐다. 하지만 부끄러워도 말 할걸. 아빠를 닮고 싶다고. 콧등이 시큰거려도, 목이 메여도 말할걸.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아빠가 최고라고 말 할걸. 그저 탕 속에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아빠한테 내 말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아빠랑 있으면 가끔 내 미래도 보인다. 내 미래의 모습. 나도 나중에 아빠가 되면 어린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하러 오겠지. 어릴땐 몰랐는데 탕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아니 상상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가장이라는 자리가 만든 사람들이다. 가만히 흔들리는 수면 위로 아빠 얼굴이랑 내 얼굴이 비친다. 아빠에게는 어릴적 아빠를 올려다 보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은데 나는 그 때와 지금의 아빠가 왠지 내 투정과 응석에 적응해버린, 나 때문에 점점 기대치를 낮추게 된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다던 우리 아빠, 그래도 여전히 유쾌하시고 웃음이 많으시고, 그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사우나 열기를 견디다가 나보다 먼저 나오시는 아빠. 가끔 불편한 팔로 혼자서 타울로 등을 씻으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씻어드리고 싶은데 왠지 또 왠지 머쓱해서 그만 둔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 열탕의 보글거리는 거품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는지 아무 말씀 안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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