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1980년 그의 저서인 <제3의 물결> 에서 인류가 겪어왔던 두 가지의 큰 변화 -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 - 뒤의 새로운 큰 변화를 예견한 바 있다. '정보 혁명' 이라고 명명된 그 새로운 범인류적 변화의 물결은 실제가 되어 지난 34년 간 다소 거칠게 몰아쳤고, 인류는 그 물결이 어느새 발목과 무릎을 넘어 턱 밑까지 밀려오는 것을 인지할 새도 없이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게 되었다. 해가 거듭함에 따라 사회가 정보화 되는 속도를 지켜보자니, 이 변화는 더 이상 물결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다. 인터넷 상에서 정보가 파도를 치는 나머지 모두가 웹 ‘서핑'을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을 보면 말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정보는 초 이하의 단위로 공유되고 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의 범위를 일찍이 초월한 속도로 몰아치는 정보의 물결은 파도의 수준을 넘어 정보의 해일이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게 되었다. 일례로, 이메일 계정을 극도로 신경 써서 관리하지 않을 시 단 며칠 사이에 스팸 메일로 가득 찬 이메일 수신함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은 빈번하다. 웹 상의 광고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해 구글은 약 598억 달러의 매출과 약 129억 달러의 순 수익을 기록했다. 이 수익구조 중 광고수익은 약 83%를 차지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일년간 구글 사용자들은 약 496억 달러 규모의 광고에 노출 되었던 것이다. 요새는 구글과 페이스북을 비롯한 여러 웹 플랫폼들에서 사용자의 행동 패턴과 웹 사용 기록을 분석하여 광고 게재에 반영하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웹 사용자들이 비로소 광고를 단순히 웹 상의 잡음으로 여기는 것을 떠나 새로운 장르의 정보로써 인지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피 광고자 친화적 광고라 할 지라도 그 절대적 양이 지나치게 많은 현재, 웹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수 많은 광고를 항상 웃어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에서 언급한 스팸 메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스팸 메일'이라는 단어는 BBC 코미디 '몬티 파이손'의 콩트로부터 유래되었다. 바이킹 손님들을 맞아 식당의 종업원이 스팸이 들어간 메뉴를 연신 읊어대는 와중에 손님들도 입을 모아 스팸이라는 이름을 합창하며, 에피소드의 엔딩 크레딧 마저 온통 스팸으로 스패밍했던 이 방송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스팸을 보급 받던 영국의 상황을 비꼰 것이라고 한다. 이후 무분별한 이메일 광고를 스팸 메일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의 식품사인 호멜사의 지나친 스팸 광고가 스팸 메일 네이밍의 유래라는 설 또한 흔히 접할 수 있다. 두 가지 설 중 어떤 것이 사실인가는 의문스러울 뿐이다. 두 가지 다른 스팸의 유래마저 스패밍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비단 광고 뿐만이 아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 또한 한꺼번에 접하기 쉽다. 여러 가지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확실한 주관 없이는 어떠한 주장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웹 사용자간 소통의 장인 SNS 플랫폼이 더더욱 그렇다. 페이스북에 접속해도 수 많은 페이지에서 공유하는 글에 뉴스피드가 뒤덮여 보기 싫어 스크롤을 내리며 지인의 소식을 찾던 경험이 필자에게만 있는 것인가 의문스럽다. 정보는 넘쳐 흐르고 있고, 정보의 공해에 사회는 오염되고 있다. 불필요한 정보와 필요한 정보를 분간하기 쉽지 않은, 혹은 분간할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는 현 상황 내에서 끊임 없이 전달되는 죽은 정보는 좀비 영화를 연상케 한다. 전달을 통해 양이 줄어들지 않는 정보의 특성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도 끊임없이 증식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정보의 과부화로 이어진다.
정보의 해일에 침식당한 사회는 조만간 탈 정보화라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할 것이다. 조금 더 과감한 예견을 해보자면, 정보화 사회의 다음은 '자료화 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는 자료의 가공을 통해 생산된다. 자료는 정보의 재료인 셈이다.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자료에 집중하게 된다는 견해는 어찌 보면 정보화 시대 이전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퇴보가 아닌 발전을 의미한다. 정보가 아닌 자료를 선호하는 트렌드는 사회의 지적, 시민의식적 성숙도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 의무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평균 지적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고, 정보를 섭취하고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주어진 자료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가미해 고유의 정보를 생산해 내는 행위에 대한 부담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불필요한 정보의 잡음을 거부하고 자료를 직접 분석하여 활용하는 자료 선호 인구가 늘어남을 의미한다. 요리를 할 줄 알고 즐기는 사람은 패스트푸드를 사먹기 보다는 재료를 구매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건강한 식단을 차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료를 가공할 줄 알고,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 웹상에서 떠도는 수많은 패스트 인포메이션의 섭취보다 순수한 데이타 자체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어떠한 사람이 '2014년에 제일 직업적으로 전망 있는 대학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다' 라는 주장을 펼쳤을 때, 이 사람의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는 각 대학 전공 별 졸업 후 취업률에 대한 통계자료일 것이다. 이 자료는 어떠한 형태로던 이 사람의 주장을 서포트 하는 식의 인위적인 가공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과 일맥상통할 때 가장 큰 신뢰를 받을 것이다. 또한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장 그 자체가 아닌 자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통계자료의 출처는 어디인지,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정확도 높은 측정 방법을 사용 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고, 혹은 컴퓨터 공학 전공자의 취업률은 가장 높을 지 모르지만 취직 5년 이후 받는 평균 연봉에서의 1위를 타 전공자에게 내주고 있다는 또 다른 자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자료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적이며 데이타 의존도 또한 높다. 자료는 정보가 갖지 못한 객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 데이타'의 사용 또한 사회의 자료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금융, 의료, 정치, 비즈니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서로 앞다투어 양질의 자료를 얻는 자료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변화는 먼저 웹 플랫폼에서 수익을 얻는, 이를테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으로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정보와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판매한다. 따라서 전체 총 정보량 대비 필요 정보량의 비중이 낮아 지면 기업의 가치도 필연적으로 낮아 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수익 구조 때문에, 거대 기업들은 반드시 정보 다이어트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자료화 사회의 물결이 다가옴을 인지했을 때, 죽은 정보의 사회를 넘어 자료화 사회에 적응하는 개척자의 태도는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료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입맛에 따라 정보를 편식하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던 정보화 사회와는 다소 다르게, 정확성과 객관성을 잃으면 가치가 사라지는 자료의 특성 때문에 자료화 사회에서는 편향된 자료의 사용과 자신만이 원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왜곡을 가하는 행위는 상당한 제한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주장을 펼칠 때에 내 의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까지도 고려하는 열린 태도 또한 필수적이고, 상대를 인정함과 동시에 내 주장을 확고하게 펼칠 수 있는 자료의 활용 능력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자료 혁명'이라던지 '제4의 물결'이라던지 하는 거창한 네이밍이 필요할 정도로 확실한 변화의 분기점은 아마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는 여태까지의 변화와는 다르게 연속적이고, 다소 급작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미래에 있을 자료화 물결에 대한 대응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정보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던 것을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후회된다면 이번 변화에 단단히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떠할까.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 리더로써 또 다른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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