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맛 좋은 날
by 버클리보이
쨍쨍하게 햇빛이 쪼이더니, 바람은 아니 불고 무더위만 기승을 부리었다.
오늘이야말로 버클리오피니언에서 편집장 노릇을 하는 김원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밥맛 좋은 날이었다. 최근에 동아리 내에서 시작하게 된 디너버디라는 제도를 통해 아직 그 친밀함이 채 깊어지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부원들과 긴밀해질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행여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추론의 기회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에프에스엠 카페에서 어정어정하며 보이는 부원들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회장의 최측근인 듯한 김가원이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기로 되었다.
그야말로 중간고사에 시달리며 근 열흘 동안 제대로 된 식사 구경도 못한 김원준은 김가원과 함께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에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마침 디너버디라는 제도를 통해 중간고사 직후 제대로 된 식사를 통해 배를 채울 요량이 얼마나 벅차는 일인지 몰랐다. 출출한 배에 고기 한 덩어리 넣을 수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새로운 학기 새로운 사람을 만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 관계에 그다지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은 지도 벌써 한 학기가 넘었다. 어차피 만나 보았자 여자친구를 제외하고서는 집을 같이 쓰는 놈들 몇 명뿐 이거나 중학교 같이 나와 대학에서 만나게 된 오원준이 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만나 보았자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라 이 버클리라는 곳이 참 별거 없구나 하는 다소 염세주의적 생각마저 들곤 하였다. 그나마 최근, 동아리에서 친해지게 된 몇 명의 후배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정도에 불과하였는데 어제 저녁 김혜수와 초밥 몇 점을 먹고 천문학 수업에 대해 이런 저런 불평 섞인 걱정과 농담 섞인 조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새로운 친분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최근 자신의 집을 자주 방문하는 이름만 같은 중학교 친구 오원준이 천방지축으로 자신의 거처에서 등을 들이밀고 잠을 청하는 바람에 김원준은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놈, 대학에 왔으면 새로운 사람이나 만날 것이지 자꾸 귀찮게 하면 어쩌란 말이야!”
하고 드러누운 이의 등을 괜히 떠밀고 다리를 몹시 차던 차였기에 아는 이를 자꾸 보는 데에 대한 반향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친분에 목이 말라 있었다. 동아리 활동이라도 다양하게 해 보라고 친구에게 조언도 던져보았건만, 막상 친분의 폭이 넓어지기보다는 줄창 깊이만 깊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매일 자신과 부대끼는 김가원에게도 새로운 친구를 소개시켜 줄 수 있다. 디너버디 알림을 받은 김원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감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디너버디와의 약속이 잡힌 바로 그 날. 운 좋게도 캠퍼스에서 동아리 회장을 마주하여 마치 수업에 늦어 서두르는 듯 자신을 지나치려 하는 회장을 좇아 결국,
“미션이 무어요?”
라고 물었다. 김원준은 이미 지금이 자신의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뛰어도 모자랄 형국이라던지, 회장은 절대 입을 열지 않으며 자신의 궁금증을 농 삼아 동아리 단체 카톡방에서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미션 말이야? 학교 옷 많이 입고 나가는 거야.”
벌써부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버클리 로고가 노랗게 새겨진 챙 넓은 모자와 후드 티, 그리고 열쇠고리까지 김원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사실, 버클리에서 칼 기어 좋아하는 사람 중 둘째라면 서러운 자가 바로 김원준이 아니었던가. 미션까지 완벽하게 수행하여 밥을 공으로 얻어먹을 생각까지 하니 이미 잘 차려진 5첩 반상을 마주하고 있는 듯 입맛이 돌았다.
집에 돌아간 김원준은 두어 시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잠시 낮잠을 청하려 했다. 이를 지켜보던 그의 룸메이트가 말하길,
“너 그러다가 저녁 시간에 못 일어난다.”
하고 자려는 이의 팔을 잡으며 거듭 만류한다. 그러자 김원준은
“못 일어나긴 누가 못 일어나.”
하고 득의 양양.
“내가 아무리 답장도 늦고 늦잠도 잘 자서 조선시대 봉화라고 불리지만 밥 약속에 늦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며 곧장 숙면의 편안함에 몸을 맡기고 노곤해진 눈꺼풀을 느슨히 하였다. 잠이 드는 와중에도 알게 모르게 생기는 늦잠에 대한 불안함을 애써 억누르며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며 입맛만을 다실 뿐이었다.
어느새 어스름해진 방 안에서 계속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평소에 개인 메시지를 잘 보내지 않던 회장에게 부재중 전화까지 서너 통 걸려온 것을 보니 그 진동이 참 수상하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니 아뿔싸 이미 약속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 아닌가!
“김원준.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디너버디 약속을 잡아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고 쓰인 회장의 카톡을 확인한 뒤 디너버디가 결국 어제 저녁 식사를 같이 한 김혜수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황급히 김혜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고작이었다.
“혜수야. 말을 해, 말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니.”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너가 좋아한다던 치폴레라도 사갈게. 이걸로 어떻게 안될까?”
“……”
이러다가 마음 상한 이의 침묵이 무섭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찰나, 어느새 음식을 사서 김혜수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동아리 회의 장소에 도착해서 혜수에게 음식을 건네며 자신의 잠 많은 머리를 화난 이의 앞에 조아리며 미안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치폴레를 사다 주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밥맛이 좋더니만….”
'OFFICIAL PRESS > [Foodback] 버콥 디너버디 뒷이야기 - 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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