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답답해하는 너에게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난 우리의 관계에서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길 바란 적이 없다.
서로에게 이끌려 연인이란 이름 아래에 하나가 되었을 때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서로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추억을 공유하며 같이 보내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우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고, 같이 보내는 순간들이 권태로워졌다. 서서히 각자의 시간과 여유를 찾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네가 너의 자유를 찾기 시작할때쯤 나 역시도 너와의 시간덕에 조금은 소홀해졌던 내 친구들과 보내던 일상이 그리워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서로의 자유를 갈망하게 될수록 나의 불안감은 늘어만 갔다. 네가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생각으로 시간을 지새우는 그만큼 네가 내 생각을 해주는 시간 역시 줄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네가 친구들과 소박한 술자리를 가지며 시간을 보내는 그만큼 나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비록 너에겐 그저 우리의 관계에서 오던 얽매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끔 숨통을 트여주는, 다시금 나와의 시간이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게하는 회복의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오히려 늘어가는 듯한 우리 사이의 공백과 돌아오지 않을 듯한 너의 뒷모습을 쫓는 시간이었다. 그래, 난 너의 마음이 먼저 변해가고 있음을 느껴버린 것이다.
친구들과의 농구를 하며 몇 시간동안 땀을 내고 돌아와 후련한 표정으로 얼마나 즐거웠는지에 대해 늘어놓는 너를 보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니다. 네가 너의 취미 생활을 즐기고 본인 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원치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의 생활의 전부가 내게 결속되길 원했던 것도 아니고, 너의 생활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자신이 또 다른 네가 되길 원했던 것도 아니다. 내가 너에게 바랬던 건 우리가 떨어져 있던 그 시간만큼 네가 날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투정을 통해 너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소박한 바람 아닐까.
너의 자유를 가져도 좋다. 반복되고 익숙해진 일상에 권태로움을 느껴도 좋고, 다시 예전의 너의 취미와 친구들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 다만 나에게 지쳐가는 것만 막아줬으면 하는 거다. 그게 내가 말하는 우선 순위다. 내가 너의 뒷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는 일이 없게, 언제나 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익숙히 사랑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 나중에 가서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는 걸 발견하고 끝을 바라보기 보단 어떻게든 돌려보고자 했다.
내가 너에게 변했다고 말한 건 단순한 칭얼거림이 아니었다. 너가 느끼기도 전에 내가 먼저 눈치챈 너의 변화를 지적함으로써 관계의 전환을 바란 것이었다. 너로 하여금 내가 서운해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고 혼자 내린 판단의 결론으로 내게 너의 취미를 권하는 것보다, 너의 모든 자유를 버리고 모든 시간을 나에게만 투자하는 것보다, 내가 너의 어떤 행동들 때문에 서운함을 느꼈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내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너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왜 점점 너의 짜증이 늘어가는지, 어떻게 하면 너의 멀어지는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결국 사랑이 아닌 연애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간의 너무 깊은 믿음으로 인해 서로의 모든 바람을 이해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깊은 감정보단, 끊임없이 확인하고 자극받는, 표현을 통해 확신을 얻는 그런 관계를 말이다. 내가 너무 어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아직도 꾸준한 관심을 갈망하고, 표현이 없어도 감정을 당연시하는 관계는 당연히 서로를 지치게 하고 서로에게 소홀해지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시간을 가지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나기 전, 각자 가졌던 일상이 있고 취미가 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나 구속감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것도 좋다. 그저 우리 사이를 이어주던 친밀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표현하고 확인할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하기야 나도 날 모르는데 네가 날 알아주길 바라는것 그 자체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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