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포토]
때는 2003년, 나의 초등학생 시절, 김문한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서울에서 전학을 와서,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고 서울말을 썼다. 내 기억상으론, 그가 유일하게 우리 초등학교에서 표준어를 구사하던 친구였다. 문한이는 아버지 직장 발령 때문에, 가족이 다 부산으로 왔다고 했다. 나와 문한이가 친했던 터라, 부모님끼리도 서로 알게 되었고, 나의 어머니와 문한이의 어머니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난다. 문한이 어머니는 부산에 처음 온 것이었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받는 순간, 유배 간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던 터라, 지방이 어떤지에 대한 두려움과 서울에서 누리던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부산에 온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산에 살고 보니,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져, 서울과는 다른 느낌으로, 부산을 사랑하게 되었고, 시간이 되어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날에, 부산이 너무나도 그리울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 사례는, 한 개인의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서울과 지방의 단절, 그리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면적은 99,720㎢, 즉 206개의 나라 중, 세계 109위이며, 인구는 약 5,200만 명으로 세계 27위 수준이다. 인구는 세계 27위지만, 면적은 그에 비교해 터무니도 없이 작다. 이 작은 면적을 가진 한국이나, 인구 5,200만 명 중, 약 1,000만 명이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서울 광역권인 인천과 경기도를 포함하면, 약 2,600만 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수도권 인구 밀집의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지만, 한국은 선진국 기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순위 규모 법칙(Rank-Size Rule)에 따르면, 그 나라의 2위 도시는 1위 도시의 약 1/2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서울과 부산의 인구 비율은 1000:350으로, 3:1에 근접했고, 서울 수도권과 부산 광역권을 비교하면, 2500:800으로 3:1의 비율이 훌쩍 넘어간다. 이는, 일본, 미국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에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으로, 그 도시의 면적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서울 근방에 밀집해서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이다. 말뜻만 놓고 풀어보자면, 서울은 목적지나 성공을 의미한다. 이처럼 서울은 성공의 기준이 되었고, 예부터 지금까지 모든 문화, 예술, 기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 되었다. 이 같은 현상을 풍자하여 나온 용어가 “서울공화국”이다.
서울은 조선 시대 이후, 현재까지 수도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서울은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예술의 집합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따라서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최신식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변화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나머지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고, 이 장점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단연 으뜸은 교육일 것이다. 조선 시대 집현전, 성균관은 한양에 있었고, 그 이후 생겨난, 종합대학들은 서울에서부터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대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려드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제외한 국내 상위 20위권 대학 중 대다수는 수도권에 있다. 특성화고등학교와 전문고등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위 고등학교 또한, 서울에 있다. 이 현실은,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몰려들고, 그 교육을 바탕으로 서울 근방에 있는 직장을 목표로 달려간다. 이 순환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회기반시설과 서비스를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요인이고, 회사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서울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도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만족감을 나타낸다. 수도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커지는 폐해들이 너무나도 많다.
첫 번째로 피부에 와 닿을 것은 주택 문제이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주택 건립이 필요하다. 서울로의 통근 거리가 먼 곳은 가치가 낮아서, 서울 외곽과 경기도권에 계속해서 건물이 올라간다. 좁은 면적에, 재건축과 신축 건설을 통해 건물 숲이 형성된다. 좋은 대학, 문화 시설, 그리고 회사가 집중된 곳은 땅값과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올라간다. 따라서 이를 부담할 수 없는 서민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고, 빈민가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도, 수입보다 턱없이 높은 집값과 생활비 탓에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되고, 엥겔 계수는 높아진다.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하고, 인구가 더 집중될수록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두 번째로는, 환경문제이다.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사람들이 사용해야 하는 식수와 정화비용이 많이 든다. 하수 처리장과 쓰레기장의 추가 건립이 필요하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 그 시설이 유치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정부와 끝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3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운용되다 보니, 대기 오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에 더해, 높은 인구에 따른 높은 전기 사용량으로, 더 많은 양의 전기 에너지가 필요해서, 더 많은 발전소가 건립, 가동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기 오염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있다.
마지막이자, 가장 뼈아픈 폐해는, 지방 산업의 도태이다. 수도권의 인구 증가 원인이 수도권 거주민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수많은 인재가 꿈을 좇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지방의 인재들이 상경하는 이유는, 지방에 있는 회사, 근무환경,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의 불만족으로 지방을 떠나는 것이다.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갈수록 지방의 인구 고령화는 속도를 붙이게 되고,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지방 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수도권의 동력만으론 이 경제 체제를 버텨낼 수 없다. 각 지역에 있는 산업이 활성화되어, 각 지역에 맞는 색의 옷을 입고 발전의 근간이 되어, 경제라는 큰 산을 버틸 수 있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상도 지방은 어업, 조선, 제철, 중공업 등의 산업으로 수출 경제의 기둥이 되었고, 호남지방은 농경, 조선, 충청도는 IT, 반도체, 연구 전문 기관 등으로 국가의 큰 기둥이 되어 있다. 다른 지역도, 작은 인구로, 큰 짐을 지고 있다. 이처럼, 서비스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 주요 산업은 지방에 포진해 있다. 이 모든 것은 지역에 수많은 직장이 있고,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30대의취직의 문이 역사상 가장 좁고, 힘들 때에, 왜 사람들은 수많은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극명하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지방은 몇몇 관광 도시를 제외하곤, 수도권과 비교하면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문화 시설이 뒤떨어져 있으며, 근무 환경이 서울보다 열악하다.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수도권 사람이 지방에 왔을 때, 그곳에는 같이 자라온 친구가 드물며, 가족 또는 친척이 없으므로, 혼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된다. 나의 지인 중 서울 모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고, 장학금까지 받은 친구가 있다. 그는 울산 출신이었기 때문에, 직장이 울산에 잡혔지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울산으로 왔다. 나에게 또 다른 지인이 있다. 그도 서울 모 대학에서 공대 학위를 받고, 장학금까지 받았다. 그는 수도권에 있는 여러 회사에 취직 원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고, 울산에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울산으로 올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고, 결국 포기했다. 그는 나에게, ‘차라리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아무 데서나 일할 수 있는 의대를 갔어야 했나’고 한탄했다.
이처럼 지방의 암울한 현실 앞에,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정부도 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정부 세종청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방 역량 강화와 인구 분산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실로 미미하다. 지방과 서울의 격차를 줄이고, 인구를 분산시킬 방법은 단기간의 계획으로도 불가능하고, 정부 수도 이전과 같이 정부 기관이나 하나의 큰 회사를 통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해법은, 장기적이고도 본질적인 것의 변화만이 진정한 지방의 경제 회복과 인구 분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인구 분산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성 있는 방법은 지방 공립대학 육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바야흐로, 30년 전에는 부산대학교, 경북대학교 등 지방 공립대학교가 현재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 보다 더 선호 받던 때가 있었다. 고향에서 너무나도 먼 서울보다, 고향 근처의 좋은 대학으로 가서, 학문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여, 지방 경제에 이바지하기에 좋은 환경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방 대학으로 유입되었던 학생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여성이 집을 떠나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며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가 많았다. 그들은 성적이 빼어났음에도, 고향 근처에 남아, 지방 공립대학교에 다니며 미래를 준비했고, 사범대학교, 어문학부, 경제학부 등 저명한 학과에 진학하여, 현재의 지방 산업과 교육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많은 주에는 저명한 주립대학교들이 세워져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엘에이 캠퍼스, 워싱턴 주립대학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등 연방과 주 정부의 예산으로 세워진 대학교가 수없이 많다. 이 대학들은 Washington D.C. 와 뉴욕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많은 국제학생을 유치하고 있으며,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크게 얻고 있다.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일부는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이 대학교 근처에 있는 연구 기관 또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 주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고, 그들이 낸 세금을 바탕으로, 더 많은 연구 및 투자가 활성화되며, 다른 기업들이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한국도 이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좋은 대학교 근처에는 좋은 초,중, 고등학교가 생기고, 좋은 학군이 형성된다. 그 지역의 학생들과 주변 통근권, 그리고 수도권의 학생들까지도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대학교가 된다면, 그 지역의 인재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싱크 탱크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 지방 거점 대학교를 기준으로, 장기적인 연구 투자와 각 분야의 저명한 교수를 초빙해야 한다. 좋은 예시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경우, 주 정부의 돈과 학교 재정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를 초빙해 학부와 대학원생을 가르치게 한다. 사립대학교보다 줄 수 있는 월급과 혜택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공립대학교의 장점인 사회적 유동성의 측면을 강조하여, 그들에게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기회를 제공한다. 절대적 희생이 아닌, 상대적 헌신을 강조하여, 지역 사회 발전의 기반이 되게 한다. 그 보수와 연구비는 정부 지원금으로,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 공립대학교로 가는 교수도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명한 교수들이 지방 대학에 포진하게 되면, 그를 따르는 대학원생들과 조교수들이 모여들게 되고, 많은 학부생이 그들을 따라 모여들게 된다. 지방 공립대학 육성을 통해, 주변 상권이 발전하게 되고, 그 학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그 지역에 자리 잡기에 좋은 환경이 형성되고, 인구가 모이는 곳은 필연적으로 사회기반시설의 확장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수도권으로 모여드는 현상은 조금씩 줄어들게 될 것이고, 지방의 역량이 늘어날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시간과 돈이 든다. 우리나라 정치의 단점 중 단연 으뜸은,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고, 예산 집행 변동이 심하다. 따라서, 장기적 투자가 힘들다. 여론이 모이고,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일을 밀어붙이는 집행력이 필요하다. 단기적 표심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정부에서는 수년째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법을 찾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정치권에서는 수도권 인구 집중 덕분에, 수도권의 표심만 잡아도 전체의 반을 먹고 간다는 편리함이 그들을 현재에 안주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장기적 발전과 내수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 발전과 인구 분산이 절실하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심장이다. 심장의 역할은 몸 전체에 혈액을 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장이 강한들, 몸이 약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몸 되는 지방의 발전이 수도권 발전과 병행 되어야, 장기적으로 지탱 가능한 하나의 온전한 몸이 된다.
내가 제시한 공립 대학교의 성장과 투자만으로는 지방 발전을 완성 시킬 수 없다. 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을 위한 정부 차원의 감세, 지원 등을 통해 실리콘밸리처럼 기업체가 지방에 자리 잡고 장기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위험 부담이 크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가는 아예 곪아버릴 수 있다. 끊임없는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 수렴, 그리고 정치권의 방향성 정립 등을 통해, 이를 공론화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정부가 결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장기적 투자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 출처:
[커버포토] https://patch.com/district-columbia/washingtondc/cities-suburbs-population-bo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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