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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5

기쁨의 이면 사람들에겐 여러 감정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기쁜 감정을 좋은 감정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최근, 젊은 인기 아이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우리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자신의 진짜 내면 모습의 차이에 괴리감을 느꼈고, 또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성 댓글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연예인들이 예능 방송 중 웃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방송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연예인의 진짜 내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외면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새부턴가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기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고 행복한 .. 2019. 10. 21.
내가 사랑하는 것들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의 노을을 사랑한다. 오늘도 어찌저찌 하루가 끝났다. 어깨에 짊어진 책가방은 무거우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그 날 하루 마음의 무게와는 별개로 언제나 가볍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밤늦게까지 숙제와 딴짓을 번갈아가며 하다가 새벽에 멜라토닌 젤리에 의지해 잠이 들고, 비몽사몽 일어나 부랴부랴 수업을 간 후 넓은 캠퍼스의 건물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를 두어번, 공강 때는 해도해도 줄지 않는 할 일들을 마저 끝내고 보바나 샌드위치 따위의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잠재운다.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동일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저 끝, 건물 지붕 끄트머리에 매달린 해가 뉘엿뉘엿, 매일같이 다른 색으로 하늘을 물들.. 2019. 2. 28.
21. 공기에 배어있는 짙은 향수만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다.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단조로운 하루 속에 난데없이 코로 훅 들어오는, 익숙한 “그 날의 향”. 엄마와 토요일 장날 순대를 사러 102동 앞으로 내려가던 내리막길에서 맡았던 냄새, 매미가 찌르르 울던 여름날 친구와 폴라포 하나씩 입에 물고 집에 가던 하굣길에서 맡았던 냄새. 유난히 소소하고 유난히 사소해 알록달록한 기억의 프랙털 저편에 숨어있던, 소소하고 사소하게 행복했던 순간들. 그날의 태양 역시 오늘의 태양과 분명 같은 놈이었을텐데. 햇빛의 땅 캘리포니아, 눈이 시리게 밝은 이곳의 태양은 날 슬프게 하는구나. 한창 초점 잃은 눈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버스가 도착해 나를 태우고, 나는 버스의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된다. 형언할.. 2018. 10. 24.
건빵과 별사탕 [cover] 언제부터인가 내 옆자리에 네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잠에서 깼을 때, 누가 더 많이 먹는지 내기를 하고 올챙이처럼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한숨지은 후 격한 운동으로 죄책감을 달랠 때, 끊임없이 몰아치는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댈 때 그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종일 잠만 잘 때. 그 모든 순간에 언제나 나는 너와 함께였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우리 두 명은 서로의 4년간의 대학 생활을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언제나 너로 가득 차 있던 내 옆자리가 공허해진 요즘, 그 텅 빈 자리를 바라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롱디’ 그리고 ‘고무신’이라는 단어들을 별것 아니라.. 2017. 11. 2.
스물 넷, 불안 (cover) 1. 스물 넷.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명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했고, 누구는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으며, 누구는 회계법인에 막 둥지를 틀었다. 오고 가는 인사와 축하가 정신 없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종종 일상의 표정으로 가리고 있는 의식의 저변에서 침식되는 자존감과 발아하는 불안감을 발견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이룬 것 없는 내가 심술궂은 사람마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 멈칫거렸다. 2. 사람들은 성공한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대게 그 스토리의 주인공은 청중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여러 강의를 접하다 보면 인생의 기수가 되라는, 달리는 말의 고삐를 주도적으로 쥐라는 식의 두리뭉술한 조언만이 남는 경우가 .. 2017.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