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8

오늘 내게 주어진 선물 "인생은 빠르게 변한다.인생은 한순간에 달라진다. 저녁식탁에서 지금까지의 인생이 끝나기도 한다. 자기연민의 문제." [1], [2] 미국의 저명한 작가 조앤 디디온의 베스트셀러 ‘상실’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은 이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4줄의 메시지와 함께 시작된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남편과의 이별을 맞이한 조앤 디디온은, 상실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의 한계를 고찰하였다. ‘존이 돌아올지 모르니 그의 신발을 버릴 수 없었다’며 남편의 죽음을 부정하는 단계를 거쳐, 그녀는 ‘마법’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한 해를 보낸다. 그녀는 홀로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회상하며 자신에게 다가온 비참한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상실로 인한 비통함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 2017. 10. 19.
따끈한 추억 한 그릇 다른 모든 생물에게 음식은 그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간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요리하고 먹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문화와 예술로 생각한다. 살기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치고는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등 생각보다 많은 열정과 시간, 돈을 쏟는다.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든 창의성과 문명은 자연히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민한 결과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인생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문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꽤 깊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때면 꼭 그때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나 그 날의 에피소드, 그 장소의 분위기가 함께 생각나지 않는가. 어머니를.. 2017. 4. 22.
모녀의 이탈리아 여행기 필자는 이번 겨울,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공간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학교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그렇게 정신 사나울 수 없었던 공항이, 단 이틀 만에 엄마와의 여행이 시작하는 설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워낙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필자의 가족은 방학 때마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하지만 필자가 미국으로 대학을 올 무렵, 아빠의 일도 바빠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셋이 떠나는 여행은 줄어들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역시 아빠의 바쁜 일정은 변하지 않았고, 4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을 탓하며 어쩔 수 없이 여행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가족과의 여행을 많이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나 둘이서.. 2017. 2. 18.
차가운 콘트리트 속 타인의 기억에 관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의 결말을 기억해본다.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가슴 아린 이별을 경험한 양조위는 근 천년 역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앞에 말없이 서있다. 마침내 사원의 외벽에서 구멍 하나를 찾은 그는 고민 끝에 그 곳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순간 아름다운 현악기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의 고뇌하는 모습을 담던 미동조차 없던 카메라는 어느새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끝내 비밀을 모두 털어놓은 그는 그 구멍을 진흙으로 채우고는 자신의 외투를 챙겨 사원을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인적이 사라진 사원의 이런저런 부분들을 비추다 서서히 끝을 맺는다. 마치 유적의 역사가 양조위의 통한과 함께 더욱더 깊.. 2016. 3. 19.
봄날, 벚꽃 그리고 우리 꼭! 음악 재생 후 읽어 주세요컴퓨터로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벚꽃.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날의 분홍빛 축복은 금방 또 다시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겠지만, 그 잔상만은 늘 우리의 기억에 남아 봄을 추억하게 만든다. 매년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올 때 즈음 화사하게 피어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벚꽃은 야속하게도 사랑했던 옛 연인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져 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잊지 않기라도 한 듯 돌아오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우리 마음 속에 왠지 모를 설렘이 피어나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완연하게 핀 벚꽃들 사이를 걸어 봤던 건 고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즈음의 봄이었다. 깊은 산 중턱에 위치해 그만큼 계절의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났던 우리 학교는 .. 2016. 3. 5.
순수함, 그리고 겨울에 관해 Seiman C, Flickr 1월, 어느새 해가 진 삼성동의 빌딩 숲 속 어딘가, 십 년간의 외국 생활과 이러저러한 이유 탓에 한국의 겨울을 볼 일이 없었던 나는 열두 살 무렵 마지막으로 본 진눈깨비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 밤하늘 색과 비슷한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비스듬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지하철역 상가에서 천원 몇 장을 건네고 사서 낀 검은 털 장갑이 생각보다 두터워 라이터를 켜기가 어려웠고, 오른쪽 장갑을 벗어 시린 손과 담배를 코트로 가린 채 다시 한 번, 두 번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렸다. 어느새 불붙은 담배는 어두운 거리에서 홀로 붉게 빛났고, 몰려오던 피곤함에 벽에 기대선 나는 담배 연기 너머로 지나가던 이름 모를 여인들과 몇 초간 눈을 마주친다던지 하.. 2016.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