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글을 읽으러 들어온 당신, 스피커를 뮤트(mute)로 해놓지 않은 이상 당신의 귓가엔 익숙한 선율이 흘러들어올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배경음악 중 하나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주 뭉클하게 만들었던, 잔잔하지만 애절한 곡이다. 전창엽, 진명용 작곡의 'Missing You'라는 피아노 연주곡인데, '별그대'를 시청한 당신이라면 듣자마자 도민준과 천송이 커플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토록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했던 수많은 영상물들의 배경음악이 남아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그 노래가 예고도 없이 흘러나오면, 우리가 보았던 영상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하나가 되어 한장면, 한장면씩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더 나아가, 그 영상물이 우리에게 주었던 감정들이 우리들의 마음에 아낌없이 스며들기도 한다. 지금 당신곁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슬펐던 영화의 한 장면을, 또는 박장대소를 일으켰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오프닝(Opening)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영상을 대중 매체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영상 커뮤니케이션'이라 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문화현상을 영상문화라고 한다. 영화, 방송, 광고, 사진,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등과 관련된 산업을 영상 산업이라 하며 이런 환경속에서 성장한 이들을 영상 세대라 한다.1 우리가 속한 영상세대는 수많은 영상들 속에서 꿈과 이상을 키우고 있으며, 영상 산업과 음악 산업의 발전을 위해 나날히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영상과 음악이 공존하는 이상 그 둘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신체의 오각 중 시각과 청각은 어쩌면 천생연분일지도 모르겠다.
배경음악이 없는 영화, 드라마, 광고, 그 어떤 영상물을 떠올려 본적 있는가? 곱게 차려입은 옷의 포인트인 벨트나 악세사리를 잊어버렸거나, 맛있게 차려진 반찬의 양념이 부족해 싱거워서 건강한 맛은 커녕, 맹한 물 맛이 날 것 같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게 되는 대중 매체에서 '배경음악'이란 분리될 수 없는 큰 요소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OST'라는 명칭을 이쯤에서 소개해야겠다. OST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riginal Sound Track)의 줄임말로, 많은 영상물의 주제곡을 가리키는데에 쓰인다.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에겐 너무나 많이 접해 진부해진 곡일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할 것 같은 곡으로 예를 들겠다.
올해 초 1월 16일에 개봉해, 현재까지도 남녀노소를 불문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영화 '겨울왕곡'의 대표 주제곡 '렛잇고 (Let It Go)'에 대해 얘기해보자. 겨울왕국 하면 렛잇고가 생각나고, 렛잇고 하면 겨울왕국이 생각난다고 할 수 있을만큼 큰 인기와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영화와 그의 OST이다. 그 영향을 되새겨 보자면 겨울왕국을 아직까지도 보지 않은 나, 글쓴이조차 이 영화와 배경음악의 연관성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음악을 다운받아 들었고, 뮤직비디오까지 수없이 돌려보았다. 이처럼 영상 매체물과 영상에 삽입된 수많은 곡들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거나 들은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기억속에 박힐 수 있다. 우리의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을 수도 있으며, 평소처럼 인터넷 검색을 하다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내 일상에서 일어난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알려주고자 한다.
얼마 전 우리 버클리 오피니언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여 학교에서 한시간 남짓 떨어진 곳으로 엠티를 다녀왔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인 날 부터 시작된다는 입춘이 올해 2014년에는 2월 4일 화요일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월 말 즈음 떠난 우리 식구의 엠티는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엠티 내내 비가 오고 심지어 태풍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기예보에 불안불안한 마음을 안고 떠났다. 해가 저물 즈음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긴 하였지만 그 전까진 다행히도 우리가 준비한 계획에 차질없을 만큼 꽤 좋은 날씨였다.
다들 일정을 마치고 모여 피곤한 발걸음으로 숙소에 향할 때가 되서야 하늘은 기다렸다는듯이 비를 주륵주륵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모두 지쳐 옹기종기 모여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찝찝하다 느낀 사람들은 바로 씻기위해 화장실을 쓸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그 때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 스태프 모두 굶주리고 있었다. 엠티의 묘미 하면 또 요리 아니겠는가? 우리들 중 이번 엠티에서 요리담당을 맡았던 서쉐프가 나서서 요리를 시작했고, 따라서 몇 명의 멤버들이 그를 도와 요리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날 아침,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고 늦게나마 숙소에 도착했던 나 또한 빽빽했던 일정 때문이었는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아랫층 여자 스태프들만의 공간에 자리한 푹신푹신한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윗층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점점 준비되어가는 요리의 냄새에 이끌려 계단으로 향했다. 위에 올라가니 우리 멤버들 중 한 명의 노트북에 자그마한 텀블러(tumbler) 크기의 스피커 두개가 연결되어, 나란히 카펫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투명 스피커 안에 들어있던 적은 양의 물이 음악의 비트(beat)에 맞춰 분수처럼 위로 솟아올라 춤을주었는데, 이에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조명까지 더해진 재미있는 스피커였다.
그리고 얼마 뒤 버클리 오피니언의 또 한명의 멤버가 아랫층에서 윗층으로 올라왔는데, 나와 함께 거실에 놓여진 스피커를 구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으로 재생된 노래를 듣고는 조금 신이 난 목소리로 노래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 노래는 바로 일본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매이션 작품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 '변하지 않는 것 (わらないもの)'이라는 곡이였다.
'변하지 않는 것'이 스피커에 흘러 나오자마자 "이거 '시간을 달리는 소녀' OST 아니야?" 라며 순간적으로 애니매이션을 떠올린 버콥의 멤버의 마음속엔 아마도 애니매이션이나 노래 둘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모두 깊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잔잔한 피아노 멜로디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더해진 OST의 청각적 요소를 통해 애니매이션의 시각적 영역이 준 자극을 기억한 이 멤버는 작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몸엔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게 존재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본래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인상(感覺印象)의 종류(모달리티)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자극(시각에서의 가시광선, 청각에서의 음파) 사이에는 1대 1의 대응이 있다고 한다.2 영상물과 OST는 우리들의 청각과 물리적 자극인 시각의 가시광선, 이 둘의 상호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 계기를 통하여 우리 버클리 오피니언의 멤버들이 글, 음악, 그리고 영상물까지 포함한 매체물을 특히나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더 나아가 시각과 청각의 친밀한 관계, 그리고 영상 매체물에 삽입되는 OST의 중요성과 효과를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상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OST, 배경음악. 혹시 모르지 않을까? 당신이 다음으로 'Missing You'나 '변하지 않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별에서 온 그대' 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대신, 지금 필자가 끝맺으려는 이 글을 떠올리게 될지도. 또 독자들에게 이런 작은 기대를 걸며 내 글을 마치기 전에, 어쩌면 영상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에도 BGM(Background Music)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만의 OST는 무엇인가?
1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9802&cid=342&categoryId=342
2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3011&cid=40942&categoryId=3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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