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소감
소크라테스가 그러지 않았던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동굴에서 불 피워 둘러앉아 있던 시절부터 지금 키보드 워리어들의 시대까지 친목활동(이하 친목질)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자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인터넷 세상이 도래한 때에 그 오래 이어져온 친목질이 온라인 공간으로 전이된 것은 획기적임과 동시에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현상 속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그 중 가장 굵직한 것들만 모아 한번 탐구해보고자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도 발 들인 적 없는 사람으로서 나름 객관적인 체험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몇몇 악명 높은 커뮤니티가 있는지라 욕 먹을 각오하고 쓰는 글이므로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별로 아프지 않으리라. 자, 그럼 지극히 주관적인 매크로잉크의 커뮤니티 탐구, 시작해보겠다.
뭐 이리 많냐
판, 디씨, 일베, 오유, 여시, 미즈넷, 웃대, 인스티즈… 지인들에게 국내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가 무엇이냐 묻자 눈에 익은 몇몇 사이트와 금시초문인 여러 이름들을 소개받았다. 시작도 전에 시리즈를 포기할까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으나 거르고 걸러 대여섯 편의 시리즈를 짜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시작할 곳은 바로 디씨 갤러리가 되시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제일 많이 들어 본 곳이기도 하고, 여러 커뮤니티들의 전신이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주소를 치고 들어가면 웬만한 포털 사이트 부럽지 않은 메인 페이지가 나온다. 옛 하나포스 (요즘 학생들은 기억이나 할는지) 유저로써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구석구석 광고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수준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디자인이나 검색어 랭킹까지 갖추고 있는 모습은 커뮤니티의 크기를 대변하는 듯 하다.
디씨 인사이드는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친목질 커뮤니티라기보단 여러 커뮤니티의 집합소 같은 개념인데, 주제별로 ‘갤러리’라는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 디씨 인사이드 내에 무수히 많은 하위 커뮤니티들을 구분 지어 놓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단순히 ‘크다’고 해도 감이 안 잡히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1600개 이상의 갤러리가 활성화 되어있으며 (갤러리는 이슈가 생길 때마다 무한정으로 생겨나는 듯 하다. 신인 연예인이 데뷔를 했다든가, 새로운 드라마가 나왔다든가, 선거철이 되었다든가.) 하루에 80만개 가량이 댓글이 달린다 한다. 아득한 수준의 숫자다. 한국 사람들의 잉여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대체 무슨 주제로 갤러리를 만들길래 천 개가 넘냐고?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한 갤러리가 존재한다. 필자도 놀란 것이, 유명 연예인, 스포츠, 방송 등에 대한 갤러리는 당연하고 서울대부터 2년제 대학까지 각기 개설된 대학별 갤러리, 뜬금없이 구 단위까지 내려가는 지역별 갤러리, 심지어 롯데리아 갤러리까지 존재한다. 이쯤 되면 그냥 아무거나 다 있는 거다. 그냥 관심사에 대한 게시판 형식의 커뮤니티인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니다. 오직 ‘친목질’만을 위한 소셜 서클 같은 개념의 군대동기, 사진 동호회, 운동동호회 갤러리 또한 존재한다. 회원 수가 얼마인지 마냥 궁금할 따름이다.
<그냥 아무거나 검색하면 다 나온다>
사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관심사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의미에서 디씨 인사이드는 시간의 무덤이라 할만 하지 않을까. 그냥 관심 있는 키워드 몇 개만 타고 들어가 갤러리를 읽다 보면 필히 몇 시간씩 지나 있으리라. 필자만 해도 무슨 갤러리가 있나 스크롤을 하는 와중에 ‘호오’하고 클릭할 뻔한 갤러리가 한둘이 아닐 만큼 별게 다 있다.
하지만 탐구라는 명목 하에 들어온 만큼 정신줄을 부여잡고 주요 갤러리만을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디씨’라는 이름하면 빠질 수 없는 갤러리가 두어 개 있다. 바로 ‘야갤’ (프로야구 갤러리)과 ‘주갤’ (주식 갤러리).
인기 갤러리 순위는 야갤, 주갤, 그리고 이슈가 되는 연예인, 게임, 및 방송으로 항상 구성된다 할 수 있을 만큼 야갤과 주갤의 커뮤니티 활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여 디씨 인사이드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본 곳은 당당히 인기 랭킹 1위에 랭크 된 국내야구갤러리, 일명 야갤이다. 지난 글도 올해 프로야구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했을 만큼 프로야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로서, 한창 가을 야구를 하고 있는 엘지와 넥센에 대한 토론이 진행 중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보았다.
그런데 프로야구 얘기는 개뿔. 대혼란의 장이었다.
1. 이것은 국내프로야구갤러리가 아니다. 간간히 나오는 야구얘기는 오로지 미국 월드시리즈에 대한 게시물이었다. 혹시 디씨에 MLB갤러리가 없는 것인가 찾아보았으나, 메이저리그 얘기에 매우 충실한 해외야구갤러리가 존재했다.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아, 여기는 그냥 하고 싶은 얘기 마음대로 하는 곳이구나. ‘국내 야구에 관련된 사진과 내용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운영자의 공지글이 처량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2. 강한 남초현상을 보이는 갤러리다. 갤러리 유저들 간에 반말은 공식화 되어있고, 매분 쏟아져 나오는 게시글의 상당수가 섹드립인 것으로 보아 갤러리 유저들 스스로 본인들이 대다수 남성일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게시글의 주제는 정말로 다양한데, 연애 상담, 여자친구 자랑, 공무원 시험, 대학 진학 상담, 뜬금없는 짤방 게시 등 국내프로야구를 제외한 세상 모든 남성들의 신변잡기 주제에 대한 게시글이 올라온다. 정말 놀라운 것은 대다수의 게시글에 몇 개씩 댓글이 달리며 피드백이 된다는 점. ‘이게 뭐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한 지 모르겠다.
3. 정말 위험한 생각이지만, 좀 웃긴 게 많다. 킥킥대며 볼 만한 글들이 매분 수십 개씩 업로드 되는데,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창을 닫았다.
자세한 탐구가 목적이었으나 커뮤니티의 병신력과 중독성이 상당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어 주식갤러리 탐구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프로야구갤러리의 도를 넘은 자유분방함과 신변잡기적인 성질을 목견한 이후 주식갤러리에 대한 기대치를 바닥까지 낮추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슨 주식 얘기를 하겠어…’ 마음을 내려놓고 갤러리에 입장한 필자였으나 이게 웬걸, 상당히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갤러리였다. 공지글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주식갤러리 용어, 추천 투자도서, 국내외 주요지수 등 상당히 투자관련 내용에 치중된 글이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간간히 섹드립과 헛소리가 보이지만 야갤처럼 카오스 상태의 갤러리는 아니라 하겠다.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심풀이 삼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가 접속했을 때 석유관련 토픽이 이슈였는지 몇 백 개의 석유, 석탄 관련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야구갤러리의 아노미 상태가 떠올라 왠지 모르게 감동적인 주제관련성이었다.
1. 투자 관련 정보가 상당히 많이 올라온다. 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돌아다녀도 무방할 듯 하다. (절대 뉴스 대신 보라는 뜻이 아니다. 결국 커뮤니티 글임을 명심하는 것이 이로울 것 같다.)
2. 디씨 인사이드는 커뮤니티 특유의 유머 코드가 있는 것 같다. ‘~냐?’로 끝나는 말투부터, 다양한 짤방 업로드까지 야갤과 주갤의 매우 다른 양상에도 불구하고 두 갤러리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DC 인사이드 탐방을 마치며
단 두 개의 갤러리 밖에 돌아보지 않았지만, 성급한 일반화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매우 주관적인 탐구라 제목에도 명시되어 있으니 괜찮으리라.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타이틀을 내건 DC 인사이드. 필자는 독특한 유머코드를 가진 대형 커뮤니티 정도로 요약하겠다. 온라인 상으로 게시판을 보는 것이 다임에도 불구하고 왁자지껄함이 느껴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1. 강한 유대감을 공유하는 친목질이 하고 싶다면 동호회 갤러리를 찾아보라. 분명 당신의 취미와 부합하는 갤러리가 존재할 것이다.
2. 단순한 킬링타임을 원한다면, 사실 아무 주제나 검색해서 갤러리 탐구를 해보면 될 듯하다. 굉장히 빠르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만 필자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 말해주고 싶다.
3. 당신의 병신력 및 드립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국내프로야구갤러리에 입성해보라. 대선배님들을 만나 경탄할 것이다.
이상 DC 인사이드에 대한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였다. 버클리 오피니언 임원진 차원의 제재가 없는 이상 다음 편에서 탐구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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