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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수저 계급론 : 노력보단 숟가락 색인 사회





          최근 대한민국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사회 현상을 하나 꼽으라 하면 청춘 세대 사이에서 꽤나 오랫동안 유행 중인 '수저 계급론' 문제를 결코 빼 놓을 수 없다. 한우를 육질에 따라 1++부터 한 단계 아래씩 등급을 매기듯이, 사람도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그리고 동수저라는 계급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라는 영어식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수저 계급론은 인터넷이나 TV 등의 매체에서 가벼운 가십거리 또는 하나의 유머 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단순히 웃어넘기고 말아도 될 정도의 가벼운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현재 젊은 세대의 내면 속 깊은 반감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수저 계급론이 내포하는 불평등 현상을 심각한 사회 문제의 하나로 인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수저 계급론 논란이 어디에서부터 근원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88만 원 세대'(비정규직 평균 임금인 119만 원에서 20대가 벌어들이는 비율인 73%을 곱한 88만 원에서 나온 개념)
 또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 등으로 불리며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다수의 20대, 30대 청춘들이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 끝에 이러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수록 고급 교육과 다양한 어학 능력을 갖춰 취업까지 유리한 반면, 가정 환경이 어려우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취직이 어렵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하루하루 빚만 늘어간다'는 차이가 그 바탕이다. 실제로 작년 3월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교육 수준이 높고, 이는 질 좋은 취업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불만이 젊은 청년 세대들 사이에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작년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 사이트, TV 속 뉴스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심지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수저 계급론 관련 주제를 다루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때 SBS의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이끌었던 배우 조혜정은 일명 '수저 계급론 붐'을 일으키며 많은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공중파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것이 모두 그녀의 아버지이자 한국의 명배우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배우 조재현 덕분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유능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큰 노력 없이도 쉽게 기회를 얻는다"는 논리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다. 한 마디로, '금수저 집안'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된 분노의 화살이 그녀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수저 계급론 문제는 취업이나 경제적 독립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20대 중후반과 30대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학교생활에 집중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이리저리 그려 보고 있어도 될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자주 접하는 한국 대학교들의 '대나무숲' 페이지만 봐도 금수저, 흙수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주로 "금수저로 자라서 편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싫다."라는 개인적인 불만부터, "나는 금수저인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라는 반대 입장의 속마음 표출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중 몇 개는 100개가 넘어가는 '좋아요'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담은 익명 댓글들과 함께 '토론의 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필자는 심지어 아직 10대도 채 벗어나지 않은 고등학생이, 본인이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 삶이 너무나 힘겹고 부모님이 원망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을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또 한 가지,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 수저론 논란을 다시 한 번 크게 불러일으켰던 일로 작년 12월에 벌어졌던 서울대학교 학생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해 서울대학교를 재학 중이던 해당 학생은 투신자살을 하기 20분 전 서울대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었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유서를 올린 뒤 자신이 살고 있던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무엇보다 그의 유서가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수저론에 대한 비관적 태도를 담고 있던 글의 내용과 달리 실제로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부모님과 좋은 가정 환경 아래에서 자라왔고, 최근 해외여행도 다녀왔을 만큼 '힘든 생활'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처럼, 수저 계급론에 대한 불평은 가난한 사람들만이 가지는 게 아니라 경제 수준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안에서의 이러한 수저론 논란의 증폭은 단순히 20대 세대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 표출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수저 계급론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중 하나는, 사실 본인이 금수저로 태어났든 흙수저로 태어났든, 그러한 환경 자체를 '잘못'으로 여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법적으로 옳지 않고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러 부를 축적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것이 단지 '부유하게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또 부유하다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높은 신분, 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를 도와야 한다)를 억지로 강요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 반대 입장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흙수저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사회적으로 '을'의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으며, 충분한 노력을 했는데도 '흙수저'라는 이름이 결실을 가로막는 구조 또한 결코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갑'의 횡포를 부리는 몇몇 금수저들이 있기에,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구조에는 수저 색깔이 성공을 좌우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수저 계급론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 속에서 수저 계급론이 언급되는 상황 중 '금수저'들이 그 책임을 뒤집어쓰고 눈총을 받거나 '흙수저'들이 부족한 만큼 노력을 더 하라는 황당하고 억울한 질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야 할 대상은 금수저도, 흙수저 아닌 그러한 불평등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 낸 우리 사회 자체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그러한 계급 간의 차이를 최소화하고 불만 해소를 위한 적절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당 정부의 능력이 보여지는 것이다.



         선진국들과 후진국들 사이부터, 하나의 국가 안에 존재하는 통치자와 국민들 사이, 사회 속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사이, 그리고 작은 커뮤니티 속의 리더와 구성원 사이까지. 어디에나 계급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각자 다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수저 계급론에 관한 글이나 기사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입장 차이에 따른 사람들의 의견 충돌이 굉장하다. 단지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수저 계급론이 내포하는 계급 사이 격차는 단순히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불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금수저라고 해서 이득을 얻는 만큼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흙수저라고 해서 부족한 만큼 더 큰 혜택을 달라고 주장할 권리 역시 없다. 서로 다른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원하는 일을 향해 같은 노력을 투자했을 경우 공평한 결과가 주어지는 시스템을 국가가 이끌어 내는 것이 수저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며, 정부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이 "노력해도 어차피 난 안 된다"가 아닌,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었다"라는 보람 찬 말들이 더욱 자주 들리는 사회로 변할수 있기를 바란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라도 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출처

http://pann.news.nate.com/info/257590212

http://news.joins.com/article/1894961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ldbanana8&logNo=220534451122

http://www.hankookilbo.com/v/50691237b7d041d8ab3666e8648dab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