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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11

기쁨의 이면 사람들에겐 여러 감정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기쁜 감정을 좋은 감정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최근, 젊은 인기 아이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우리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자신의 진짜 내면 모습의 차이에 괴리감을 느꼈고, 또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성 댓글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연예인들이 예능 방송 중 웃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방송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연예인의 진짜 내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외면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새부턴가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기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고 행복한 .. 2019. 10. 21.
21. 공기에 배어있는 짙은 향수만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다.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단조로운 하루 속에 난데없이 코로 훅 들어오는, 익숙한 “그 날의 향”. 엄마와 토요일 장날 순대를 사러 102동 앞으로 내려가던 내리막길에서 맡았던 냄새, 매미가 찌르르 울던 여름날 친구와 폴라포 하나씩 입에 물고 집에 가던 하굣길에서 맡았던 냄새. 유난히 소소하고 유난히 사소해 알록달록한 기억의 프랙털 저편에 숨어있던, 소소하고 사소하게 행복했던 순간들. 그날의 태양 역시 오늘의 태양과 분명 같은 놈이었을텐데. 햇빛의 땅 캘리포니아, 눈이 시리게 밝은 이곳의 태양은 날 슬프게 하는구나. 한창 초점 잃은 눈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버스가 도착해 나를 태우고, 나는 버스의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된다. 형언할.. 2018. 10. 24.
따끈한 추억 한 그릇 다른 모든 생물에게 음식은 그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간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요리하고 먹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문화와 예술로 생각한다. 살기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치고는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등 생각보다 많은 열정과 시간, 돈을 쏟는다.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든 창의성과 문명은 자연히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민한 결과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인생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문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꽤 깊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때면 꼭 그때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나 그 날의 에피소드, 그 장소의 분위기가 함께 생각나지 않는가. 어머니를.. 2017. 4. 22.
If I die tomorrow 늦은 밤, 한 여자가 고통을 호소한다. 옆의 남자는 안절부절못한 채로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간다. 여자는 점점 더해가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남자는 조심스레 그녀를 차에 태운 뒤, 교통 위반 딱지 따위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한다. 드디어 도착한 병원에서는 마치 준비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함께 여자가 분만실로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간 남자는 아파하는 아내를 본다. 아파하는 그녀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뿐. 긴 산통이 지나고 한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양가 부모님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치 지금까지의 고통.. 2017. 4. 11.
평범한 사람, 특별한 위로 “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내 인생의 구경꾼들로 인해 내 인생이 흔들릴 필요없어.” [1]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위로 글귀를 읽어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도 단순하고 당연한 한마디가 많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처지에서 이러한 위로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기조차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런 글귀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연인에게, 친구에게, 또는 가족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말들을 담고 담아 망가진 그 마음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치료법이 되기도 한다. 최.. 2017. 4. 6.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혼자 밥 먹는다고 하면 놀랄 때는 언제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혼자 사는 삶에 이상하리만치 잘 적응하기 시작했다. 5년 전 즈음만 해도 “혼밥”, “혼술” 등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마치 사회적 차원의 필수적인 무언가가 결핍되어 보듬어주어야 할 구제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면 혼밥족들은 마치 치열한 취업 경쟁과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잿빛 그늘에 놓여 어쩔 수 없이 혼자의 삶을 걷게 된 이들처럼 묘사되었다. 당시 대중에게 ‘자취’의 이미지는 한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 텅 빈 냉장고를 열어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반찬 한두 가지에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삶이었다. 부모님과 통화하며 “나는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감추.. 2017.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