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12 개헌, 급할수록 천천히 지난 2017년 3월 9일. 수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열병에 앓게 했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게 탄핵 선고를 내린다. 선고 직후 있었던 일련의 유혈사태를 제외한다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우리 국민이 몇 달에 걸쳐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시위하며 마침내 얻어낸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이 승리는 여러 외신에서 놀랄 만큼 너무도 값진 성취였고 이를 통해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미래를 모두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기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은 5일 후 3월 14일, 갑작스럽게 정치권에서 자유한국당, 국민의 당, 바른 정당 간의 야 3 당 회동을 통해 개헌을 국민투표로 대선과 함께.. 2017. 3. 18. <블랙 미러> - 과학의 발전과 인간다운 삶의 경계 매일 밤 우리를 괴롭히며 이불을 발로 차게 만드는 기억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잊히고 결국 머릿속 저 안쪽으로 밀려 기억을 하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게 된다. 아무리 진하게 박혔던 첫인상도 꾸준한 만남과 재조명의 기회가 있다면 바뀌게 될 수 있으며, 타인이 뒤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는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하든 타인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과 깨달음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평이함을 잊지 않게 해주고, 서로 쉬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과연 우리가 절대 기억을 잊지 않고 원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돌려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점수를 봐야 한다면? [1] 라는 한 영국 드라마는 이런 신선한 질문에 대한 상상력 넘.. 2017. 3. 14. 네가 물들인 시간 오늘 우연히 너의 사진을 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SNS를 구경하던 중 친한 지인의 게시물에서 오랜만이지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너였다. 너는 연애 시절부터 그 흔한 SNS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헤어진 후 너의 모습은 아직도 헤어진 그 날에 멈춰 있었다. 내 기억 속 너의 모습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너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헤어진 후 오랫동안 접어 두었던 연애 기간의 모든 기억이 마치 빨리 감기 한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1] 친구를 따라 우연히 들어가게 된 동아리. 첫 모임 날,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 내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 따위는 영화에서 만들어 낸 허구일 뿐이라고 비웃던 나에게 보란 듯이 너는 반례가 되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일과는 너로.. 2017. 3. 4. 인간과 동물, 동물과 인간 반려견 100만 시대, 얼마 전 한국의 뉴스매체에 보도된 우리나라 반려견 인구이다. 과거 애완견으로 불리던 개가 삶의 동반자인 반려견이 된 것은 동물을 부수적인 존재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존재로 여기면서부터다. 또한, 개뿐만 아니라 이젠 고양이까지도 반려묘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만 놓고 보자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힘이 세다던가 외부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능력은 딱히 없다. 즉 야생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나약한 약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인간은 진화하였고 다른 동물들은 가지지 못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도구를 이용하여 다른 동물들을 사육하고 방목하며 자연계에서 가장 최상위층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단순히 동물들을 단.. 2017. 2. 25. [500일의 썸머] 운명을 믿으시나요?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1] 바로 영화 속 내레이션의 일부다. 인트로의 가장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며, 영화의 전체적인 테마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칼럼의 지표가 되어 줄 두 문장이다. 그리고 이건, '로맨틱 코미디'라는 허울 좋은 장르 이름에 속아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커플의 500일간의 연애기를 다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던지는 경고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만남과 반복되는 우연, 착각, 기대와 실망, 그리고 이별과 새로운 시작을 담은 이야기다. 과연 '운명'은 존재할까? 라는 질문 역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들리고, 내레이터를 통해 들리고, 영화를 보.. 2016. 10. 20. 차가운 콘트리트 속 타인의 기억에 관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의 결말을 기억해본다.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가슴 아린 이별을 경험한 양조위는 근 천년 역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앞에 말없이 서있다. 마침내 사원의 외벽에서 구멍 하나를 찾은 그는 고민 끝에 그 곳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순간 아름다운 현악기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의 고뇌하는 모습을 담던 미동조차 없던 카메라는 어느새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끝내 비밀을 모두 털어놓은 그는 그 구멍을 진흙으로 채우고는 자신의 외투를 챙겨 사원을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인적이 사라진 사원의 이런저런 부분들을 비추다 서서히 끝을 맺는다. 마치 유적의 역사가 양조위의 통한과 함께 더욱더 깊.. 2016. 3. 1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