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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말의 무게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누나가 9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엄마의 딸이 되었다. 그전까지 누나는 멀리 있는 친척집에 가면 만나던 기껏해야 한 살 위의 사촌 남매였을 뿐이었다. 엄마에게 외동아들이었던 내가 겪게 될 외로움이 아픈 손가락이었던 건지, 아니면 태어나자마자 홀로 남은 누나가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엄마의 삶은 달이 차기가 무섭게 비행기에 어린 나를 싣고 누나에게 가고, 달이 질 때쯤 다시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우리가 지내던 곳은 조용하고, 깨끗한 섬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두 아이를 키우기에 그보다 적합했던 곳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친척의 집으로부터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에 누나와 나는 유달리 오랫동안 다락방에서 놀아야만 했었다. 어른들의 두런두런한 대화 소리는 놀다가 지친 우리를 자장가처럼 달래 재웠다. 다음 날, 엄마는 짐을 챙기면서 누나의 손을 잡았고 누나와 나는 그렇게 진짜 남매가 되었다. 


많은 사촌 형제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누나는 왠지 모르게 특별했다. 그것은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뛰어난 그림실력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잘 쳐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누나의 재능들이 어린 나에게 너무 일찍이 열등감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았다. 물론 그런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그러듯이, 뒤틀린 반골 기질 같은 것도 가지고 있어서 누나는 어른들에게 혼이 날 때, 본인이 납득하지 않는 한 절대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게 참 멋있어 보여서, 나는 누나에게 더 마음을 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춘기가 일찍 왔던 누나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엄마의 기대와 점점 더 동떨어져 갔다. 밤이 해안선보다 깊게 가라앉을 때쯤에 귀가하기 일쑤였고, 모든 일에 사사건건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엄마가 결혼 선물로 받았던 코트를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분명 고의는 아니었다. 그때 자신의 옷을 종종 직접 만들어 입었던 누나는 엄마가 자주 입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옷을 만들기 위해 손을 댔던 것이었다. 하지만 드레스 룸에서 그 흔적을 본 엄마는, 글쎄 그때 망연자실한 눈동자로 찢긴 옷을 쥐고 있던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짐작하기 어렵다. 그 날 저녁, 집 근처에서 누나를 마주친 나는 누나에게 지금 집에 들어가면 큰 사단이 날 테니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툭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누나는 정말로 그 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누나를 찾기 위해 엄마는 한 달 동안 길 위를 헤매고 다녔다.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들이었다. 나는 누나한테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을 전해줬던 일을 들키게 될까 엄마를 달래주지도, 누나를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 도시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곧 친구들 집을 전전하고 있던 누나를 찾을 수 있었다. 누나를 다시 집에 데리고 돌아온 날, 엄마와 누나는 참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누나는 이미 자신의 거처를 스스로 정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나이였다. 엄마가 누나의 손을 잡았던 날로부터 7년이 지난날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놓았다.





[1]



그 뒤로는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이야기가 남았을 뿐이다. 대신 누나를 데려간 외삼촌의 사업은 갑자기 망했고, 삼촌의 반대로 누나는 원하던 예고에 진학하지 못했다. 우울증이 생겼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또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누나의 삶이 주말 밤 9시쯤에 편성된 드라마였다면, 너무도 뻔한 클리셰들로 가득 차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식상하다는 이유로 잔뜩 질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3년 만에 대구에 있던 누나를 다시 찾았을 때, 삶에 지독히도 지쳐버린 눈과 마주했을 때, 텅 빈 냉장고만 그저 채워주고 돌아오는 새마을 호에 몸을 실었을 때, 그 순간들에 우리가 서로 느꼈던 감정 또한 몇 발자국쯤 떨어져서 보는 이들에겐 식상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가끔씩 생각한다. 


혹시나 내가 그때 누나에게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누나가 그날 집에 들어왔더라면,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더라면, 어땠었을까. 그냥 혼만 나고 끝났을까, 아니면 그 날에도 엄마와 손을 놓았을까. 누나가 우리와 계속 있었더라면, 누나는 원하던 미술을 배웠을까. 예고에 진학하게 되었을까. 예고에 갔더라면, 그래서 우울증 따위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삼촌과 부딪치는 일 따위는 없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누나가 다시 집을 나가지는 않지 않았을까. 혹시나 집을 나갔더라도, 3년간이나 누나를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럼 누나는 대학을 다녔을까. 지금쯤 멋진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내가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누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어떤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다. 물론 그로 인한 영향은 당신의 뜻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당신이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혹은 좋은 의도였던, 그렇지 않았던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삶의 근간과 근저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마치 거리에다 침을 뱉듯이 퉤하고 뱉어버린 충고나 위로, 혹은 비난 따위가 우기의 열대림처럼 변화무쌍한 날들로 누군가를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헤쳐 나오는 일은 오롯이 그곳으로 밀쳐진 자의 책임이 되고, 타인의 원색적인 비난과 손가락질도 오롯이 그 혼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될 것이고, 어쩌면 그를 탓하는 손가락들 중에는 그를 그곳으로 밀어 넣은 자의 손가락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이 어느 거리에 침을 뱉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내가 누나에게 그래 왔던 것처럼.




[2]




영화 [Last Holiday]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조지아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오롯이 본인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모든 것을 정리한 채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신의 병이 잘못된 판정이었음을 알게 된 조지아는 신에게 저를 가지고 장난을 치셨군요, 하고 시원하게 웃는다. 조지아의 삶은 그렇게 바뀌었다. 내가 뱉어 놓았던 말들도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서 장난을 치고 있을까. 때로 그 말들은 그들의 며칠 밤을 잠에 들지 못하게 할 것이고, 어쩌면 몇 년의 시간을 흔들기도 할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와 달리, 내가 던진 말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말의 무게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딱 내 진심과 의도만큼만 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때로 말은 마주 보고 선 둘의 등 뒤에 겨눠진 총구가 되기도 한다. 날아가는 총알이 어찌 마주 보는 두 명의 심장을 관통할 수 있을까. 심장은 누구에게나 왼쪽에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겐 그저 오른쪽 가슴에 상처만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글은 당사자의 허락을 받고 작성된 글임을 알립니다.





- 이미지 출처 -


[1]: https://wanbong.tistory.com/entry/%EC%99%B8%EB%A1%9C%EC%9B%80%EC%9D%B4-%EA%B1%B4%EA%B0%95%EC%97%90-%EB%AF%B8%EC%B9%98%EB%8A%94-%EB%82%98%EC%81%9C-%EC%98%81%ED%96%A5


[2]: 영화, Last Holida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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