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Posted by 희씨
2019.03.13 18:50 EDITORIAL/문예 :: Literature




2015


나에겐 소꿉친구가 두 명 있다. 여자인 슬과 남자인 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미술학원의 유치원 종일반에서 우리 셋은 친구가 되었다. 키도 체형도 고만고만했던 우리는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대부분 각자 그리고 가끔 함께 자라왔다. 슬은 애교 많고 외향적인 어른이 되었고, 나는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어른이 되었고, 현은… 현은 그냥 똑같았다. 그 애는 어릴적에나 지금이나 늘 서글서글하고 싹싹하고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애였다.

슬은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2015년, 그러니까 내가 영화의 관람가를 매기는 기관에서 첫 사회생활을 경험한 해, 더위와 장마와 센텀시티의 빌딩숲과 수많은 영화들로 기억되는 그 해의 여름 초입에 슬의 아들이 첫돌을 맞았다. 내 옷장엔 보세 옷집에서 몇 만원 안되게 주고 구매한 정장 슬랙스가 한 벌 있었는데, 얼굴 비춰야 할 경조사가 거의 없던 스물 한 살의 나는 차려 입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슬랙스를 꺼내 입었었다. 그 날도 나는 흰 셔츠와 검정색의 슬랙스를 입고 돌잔치가 열리는 동네 뷔페로 발걸음을 향했다. 학창시절 소위 한가닥 날린 슬의 명성에 맞게, 슬의 외향적인 성격과 어울리게 아주,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축복의 기운이 넘치는 잔치였다.

스물 한 살의 여름에 나는 인턴 동기들과 함께 일과에 대해 푸념하고 결속을 다지면서, 영화의 전당 야외 상영회에서 맥주와 함께 지루한 흑백 무성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관람하면서, 회식자리 상사에게서 받은 잔을 뒤돈 채 한번에 비우면서, 정장 차림으로 금은방에서 한 돈짜리 돌반지 값을 지불하면서 우와, 나 정말로 어른이 되어버렸네, 싶은 기분을 왕왕 느꼈었다. 슬의 품에 안긴 슬의 아들에게 “어머, 이쁜 우리 조카 생일 축하해”라고 호들갑을 떨며 나는 내 주위 어른들 특유의 부산스러움을 흉내내었고, 무언가를 모방하며 그것이 된 듯한 착각에서 오는 은근한 쾌감은 즐거웠다. 부끄럽지만 태연한 척, 서툴지만 능숙한 척, 항상 나는 어른이었던 척. 세상이 내 발 아래 있기라도 한 듯 아주 오만해지는 기분이었다.

돌잔치로부터 일주일 뒤, 현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급작스럽게 해외에서 원인 모를 심장마비로. 나에게도 소식의 여파는 꽤 컸었다. 아저씨는 내가 오줌싸개 아가였을 때부터 나에게 ‘우리 며느리’라 부르면서 딸처럼 예뻐해주신 감사한 분이셨고, 제철 음식이며 직접 낚시 해오신 횟감이며 음식이 생길 때마다 나눌 줄 아는 다정한 분이셨다. 미취학 아동으로서 맞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인형의 집을 선물해주고 간 산타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나의 대학 전공인 건축을 업으로 삼으신 분이어서 다같이 모이는 자리면 아저씨가 나를 고용해줄 것인지 내가 빨리 성공해서 아저씨를 고용할 것인지 그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았었다.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글로 적다 보니 아무리 딸처럼 예쁨 받았어도 사실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 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반오십의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님을 잃는 상상만 해도 닭똥 같은 눈물이 제멋대로 볼을 따라 떨어진다.

하지만 장례식에서 현과 고작 중학생이었던 현의 남동생은 의젓하게 자리를 지켰다. 현은 눈시울이 벌개진 숙모(라고 내가 지칭하는 현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조문객들을 공손히 맞고,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어서 애꿎은 육개장에 숟갈만 휘적거리던 나에겐 웃으며 “야, 오랜만인데 뭐 이렇게 보게 되냐,” 라고 농담까지 던졌다. 나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저 애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싶은 의문에 문득 고개를 든 순간, 그 어른스럽고, 공손하고, 실없는, 한결같이 둥글둥글한 모습들 사이 찰나의 공백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현을 보았다. 따로 또 종종 함께 커왔던 이십 년 동안 현이 그리도 낯설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 발인 후 칼같이 복귀한 군부대에서 일 년도 넘게 남은 복무기간을 채우며 그 애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마음의 성장을 아주 느리게, 속절없이 맞았을 것이다.

긴 장마 탓에 날이 꿉꿉하고 하늘이 컴컴했던 날들이었다. 슬을 축하하러 간 자리에선 모두가 찝찝한 공기마저 뭐 이쯤이야, 하고 넘겨버리며 즐거워했는데. 나는 축의와 조의가 어떤 공통적인 요소들—정장을 입어야 한다거나 부조금을 낸다거나 하는—로 정의되는 그 모순의 낯섦을 괜히 날씨에 탓하며 장례식장에서 나왔다. 고작 일주일 사이에 아주 작은 소꿉친구의 둘레 안에서만 누구는 가족을 얻고, 누구는 가족을 잃었다. 누구는 탄생을 축복받고, 누구는 상실을 위로 받았다. 그리고 나는 돌잔치와 장례식에 같은 정장바지를 입고 가 축하와 조문의 인사를 각각 건네었다. 나는 사는 게 별 것 아니라고 자주 느끼지만 아주 가끔 삶의 무게 또는 그것의 부재가 눈으로 보일 때면, 그 무게 또는 가벼움이 가족이라는 연 때문에 한없이 버겁거나 부질없게만 보일 때면, 아주 조금 무력해지고 아득해진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내가 꼰대라고 흉보고 시대에 뒤쳐진다고 놀리던 그들은 모두 이 지독한 성장통을 다 견뎌내고 그리도 초연할 수 있는 것일까. 일주일 상간으로 세상이 내 발 저만치 아래에서 내 머릿꼭대기 위로 올라가 나를 농락하듯 내려다보다시피 한 그 기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2019


꽤나 혼란스러웠던 2015의 여름 이후 4년이 지났다. 여섯 살이 된 슬의 아들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슬은 혼자서 아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워킹맘으로서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치열하지만 즐겁게 산다. 현은 제대 후 복학해서 이번에 대학을 졸업했고 꼭 옛날 현의 아버지처럼 바다 낚시를 즐긴다. 얼마전에도 그가 본인 팔뚝의 두 배나 되는 크기의 생선을 잡았다며 숙모가 사진을 자랑했다. 나는 이제 20대 중반이 되어 주위에선 제법 흔하게 결혼이며 돌잔치며 장례 소식이 들려온다. 그새 정장과 포멀한 원피스가 몇 벌 생겼고, 그에 맞출 하이힐과 가죽가방도 생겼다. 축하의 자리에서는 예전보다 덜 호들갑을 피우고, 조문의 자리에서는 꽤 능숙하게 위로를 건넨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문장이라면, 그 문장은 아마도 비논리투성이인 단어와 조각들의 모음에 가까울 것이다. 그 불온전한 파편들마저도 치이고 깎이고 던져지고 짓밟히면서 본래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슬과 현과 나또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인생이 우리의 바람처럼 아름답게는 고사하고 말끔하고 간결하게조차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다. 소실점을 향해 열심히, 꾸준히 걸어보아도 계획없이 뱃속에 들어서는 생명이나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리는 부모처럼 불가항력의 영역이 여정을 방해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평평한 컨버스나 스케치북같은 것이 아니어서, 직접 인생을 걸어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소실점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투시도 위 한 점으로 묘사된 그곳도 막상 다다르면 드넓고 광활한 평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유하는 좌표에 낙담하지 않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걸어도 걸어도, 또 걷고 다시 걷고 계속해서 걷는 것이 인생이라며 서로에게 덤덤히도 건배사를 던진다.


그러니 계획없이 태어난 아들의 사진을 SNS에 자랑스레 도배하는 슬처럼, 돌아가신 아저씨의 외모와 말투와 바다낚시 취미마저 자연스레 이어가는 현처럼, 우리 모두 인생의 부조리를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걷기를. 고되고 지난한 과정을 그저 묵묵히 살아내기를. 그럼 그 비논리투성이의 문장이 한 편의 시가 될 수도, 운율을 입어 한 구절의 노랫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실점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뒤돌아봤을 때 지나온 길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또다른 위로를 건넬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는 건 생각보다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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