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34 내가 사랑하는 것들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의 노을을 사랑한다. 오늘도 어찌저찌 하루가 끝났다. 어깨에 짊어진 책가방은 무거우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그 날 하루 마음의 무게와는 별개로 언제나 가볍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밤늦게까지 숙제와 딴짓을 번갈아가며 하다가 새벽에 멜라토닌 젤리에 의지해 잠이 들고, 비몽사몽 일어나 부랴부랴 수업을 간 후 넓은 캠퍼스의 건물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를 두어번, 공강 때는 해도해도 줄지 않는 할 일들을 마저 끝내고 보바나 샌드위치 따위의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잠재운다.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동일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저 끝, 건물 지붕 끄트머리에 매달린 해가 뉘엿뉘엿, 매일같이 다른 색으로 하늘을 물들.. 2019. 2. 28. 고독이 필요한 시간 [커버포토] [1] Photograph by Michael Yamashita 인간은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 불린다. 살면서 우리는 여러 사람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조화롭게 더불어 살기를 기대받는다. 나 역시도 그러한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라왔고 사람에 대한 정열은 내 삶의 목표에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추억을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 삶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고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이 생겼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서로에게 좋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도 나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한다면 그 '불가능'이라는 틀에서 .. 2018. 3. 1. 스무 살 최정윤 [cover] [1] 1.열아홉의 나는 달을 사랑했다. 쳇바퀴 돌 듯 굴러가는 반복적인 일상의 흐름 속에 지친 채, 불 꺼진 깜깜한 방을 더듬어 찾아간 침대에 몸을 뉘고 나면 밤하늘이 내게 쏟아졌다. 제주의 밤하늘이었다. 어두운 듯 태양의 빛을 살짝 머금고 있는 검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발자국, 그리고 외로운 달을 바라보는 것은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달빛이 나를 감싸 쉬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다음 날 하늘에 달이 없으면 묘연한 그 행방을 고민하다 잠이 들곤 하는. 나는 달에 많은 것을 말하고 많은 것을 보였다. 2.참, 돌이켜보면 그랬다. 열아홉의 나는 나의 밤하늘을 살짝 들췄을 때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핑크빛 구름, 따사로운 바람, 무지갯빛 오로라 따위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 2017. 12. 2. 건빵과 별사탕 [cover] 언제부터인가 내 옆자리에 네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잠에서 깼을 때, 누가 더 많이 먹는지 내기를 하고 올챙이처럼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한숨지은 후 격한 운동으로 죄책감을 달랠 때, 끊임없이 몰아치는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댈 때 그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종일 잠만 잘 때. 그 모든 순간에 언제나 나는 너와 함께였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우리 두 명은 서로의 4년간의 대학 생활을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언제나 너로 가득 차 있던 내 옆자리가 공허해진 요즘, 그 텅 빈 자리를 바라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롱디’ 그리고 ‘고무신’이라는 단어들을 별것 아니라.. 2017. 11. 2.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나는 어른일까? [cover] 만화란 참 신기하다. 성장기의 어린아이들이 주 시청자임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만드는 사람은 모두 어른이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만화는 어렸을 때의 내가 보고 이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뜻이 되어 다가온다. 전에는 공감할 수 없었던 캐릭터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표면상의 뜻만 이해하고 넘겼던 대사에서 커다란 울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많은 어른이 비슷한 경험을 하기 때문인 듯, ‘키덜트 (Kidult)’라는 단어까지 생길 정도로 어렸을 적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등을 즐겨 찾는 20~30대가 많다. 아이를 뜻하는 단어, 키드 (Kid)와 어른을 뜻하는 단어, 어덜트 (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는, 겉은 자랐어도 마음만은 아이였던 때와의 고리를 .. 2017. 9. 28. 따끈한 추억 한 그릇 다른 모든 생물에게 음식은 그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간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요리하고 먹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문화와 예술로 생각한다. 살기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치고는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등 생각보다 많은 열정과 시간, 돈을 쏟는다.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든 창의성과 문명은 자연히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민한 결과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인생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문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꽤 깊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때면 꼭 그때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나 그 날의 에피소드, 그 장소의 분위기가 함께 생각나지 않는가. 어머니를.. 2017. 4. 22.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