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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121

언품에 관하여 언품에 관하여 지나간 나의 옛사랑이 말했다. 너는 가끔 참 못됐다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으면 그 아픔을 똑같이 주겠다며, 듣는 자신이 받을 상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두 배 정도는 더 못되게 굴곤 한다고. 이렇게 옛날의 나는 성격이 고약해 말을 예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꽤나 낯설지만, 그땐 자상함의 표현이라는 게 거북했을까. 그는 나와는 다르게 매우 상냥했다. 나의 삐뚤어진 말투와는 달리,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면서도 한 치 뾰족함이 없었다. 나는 솔직함이라는 핑계 속에서 참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상처를 많이 주곤 했었는데. 나는 돌아서며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언품’에 대해서 고찰하기 시작했던 건 이때부터였지 싶다. 말의 품위. 사람이 갖추어야 .. 2019. 4. 3.
커피 내 귀를 휘감는 경쾌하고 발랄한 재즈 음악,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쉬지 않고 커피를 뽑아내는 커피 기계들, 커피 한 잔씩을 붙잡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나는 카페 블루 도어에 앉아있다. 캠퍼스 남단에 있는 작은 카페, 과제든 시험공부든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 자주 오는 곳이다. 내 앞에는 커피 한 잔과 샐러드 한 접시가 놓여있다. 올 때마다 항상 시키는 것들. 커피는 가장 저렴한 하우스 커피, 샐러드는 시저 샐러드여야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차가운 커피를 시켜봤다. 내가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뜨거운 걸 잘 못 먹기 때문. 음식이든 음료든 뜨거운 걸 시키면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고충이 있다. 나 혼자일 때는 상관없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내 커피를 호호.. 2019. 4. 2.
말의 무게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누나가 9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엄마의 딸이 되었다. 그전까지 누나는 멀리 있는 친척집에 가면 만나던 기껏해야 한 살 위의 사촌 남매였을 뿐이었다. 엄마에게 외동아들이었던 내가 겪게 될 외로움이 아픈 손가락이었던 건지, 아니면 태어나자마자 홀로 남은 누나가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엄마의 삶은 달이 차기가 무섭게 비행기에 어린 나를 싣고 누나에게 가고, 달이 질 때쯤 다시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우리가 지내던 곳은 조용하고, 깨끗한 섬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두 아이를 키우기에 그보다 적합했던 곳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친척의 집으로부터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 2019. 3. 21.
스물다섯, 스물하나 2015 나에겐 소꿉친구가 두 명 있다. 여자인 슬과 남자인 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미술학원의 유치원 종일반에서 우리 셋은 친구가 되었다. 키도 체형도 고만고만했던 우리는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대부분 각자 그리고 가끔 함께 자라왔다. 슬은 애교 많고 외향적인 어른이 되었고, 나는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어른이 되었고, 현은… 현은 그냥 똑같았다. 그 애는 어릴적에나 지금이나 늘 서글서글하고 싹싹하고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애였다. 슬은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2015년, 그러니까 내가 영화의 관람가를 매기는 기관에서 첫 사회생활을 경험한 해, 더위와 장마와 센텀시티의 빌딩숲과 수많은 영화들로 기억되는 그 해의 여름 초입에 슬의 아들이 첫돌을 맞았다. 내 옷장엔 보세 옷집에서 몇 만원 안되게 주.. 2019. 3. 14.
땀내 하나. 새벽 초소 근무를 설 때면 밀려오는 피로감을 덜고자 병사들은 사소한 얘기를 나누고는 했었다. 나는, 무언가 잡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에는 익숙한 성격이 아니라 병장 약장을 달고 나서는 열심히던 후임들의 입담에도 별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이내 포기한 듯한 표정의 후임이 꾸벅꾸벅 졸 때쯤 이면 공포탄뿐이 들어있지 않은 K1 소총을 초소 난간에 대충 걸쳐놓고 저 부대 밖 세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했었다. 거뭇거뭇 한 거리 변의 낡은 철물점과 국밥집들은, 마치 감춰 두었던, 내면속에 눌어붙어 있던 그을린 자국들 같았다. 여름날 새벽 밤공기를 가득 채우던 귀뚜라미 소리. 소매를 걷어올린 팔뚝을 귀찮게 하던 작은 날벌레. 수많은 상념들. 와중에는 책과 영화 얘기를 곧 잘하던 상병이 하나 있었는데.. 2019. 3. 7.
기대 (1) 성인이 되기 전까지 목포와 제주의 바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자라왔다. 그곳은 한참을 뛰놀다 보면 목 주변에 땀과 바닷바람이 뒤섞인 허연 소금 띠가 생기는 곳이었고, 그를 가리켜 소금 꽃이 폈다고 부르던 곳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그 소금 띠를 긁어서 혓바닥에 갖다 대곤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더럽다고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지만, 이성보다 본능에 좀 더 충실했던 그 나이에는 다들 손톱에 낀 소금기를 그렇게 몰래 핥았었다. 어쩌면 나만 지저분했던 것일 수도 있다. (2) 그러니 스무 살이 되어서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한 서울이 그토록 낯설고, 또 화려하게 느껴졌을 수밖에. 산만한 빌딩들이 즐비했던 테헤란로를 보았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난생처음 타본 지하철이 주었.. 2019. 3. 5.